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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과 시절식
작성자 이재선 등록일 12.09.14 조회수 285
명절과 시절식

절식(節食)은 다달이 끼어 있는 명절에 차려먹는 음식이고, 시식(時食)은 춘하추동 계절에 나는 식품으로 만드는 음식을 통틀어 말한다. 조선시대의 명절음식 단자와 종묘와 가묘에 천신하는 품목단자를 살펴보고, 또 일 년 열두 달 세시풍속을 알아보는 것은 한국 음식의 바탕을 아는 데 도움이 되며 한국식문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궁중의 사대 명절은 왕의 탄일(誕日), 정조(正朝), 망월(望月,정월보름), 동지(冬至)이다. 민가에서 옛부터 명절로 삼아온 초파일, 단오, 추석은 계절의 문호로 삼아 새 계절복을 갈아입는 외에는 별로 다른 의미가 없었다고 한다.

정조에는 하례를 받으시고 잔치를 베풀지만 단오와 추석에는 특별히 차리지 않는다. 오히려 여염집과 농가에서 큰 명절로 삼고 많이 차리고 먹고 즐긴다. 춘하추동의 시식의 풍습은 궁이나 서울이나 시골이나 매 한가지이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조의(朝議)를 정조, 동지, 성절(聖節;왕의 생일), 천추절(千秋節;왕세자의 생일)에는 왕이 왕세자 이하를 거느리고 망궐례(望闕禮)를 행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명절날의 하례식이다.

정조, 동지, 초하루, 보름(朔望), 왕과 왕비의 탄일에는 왕세자와 백관이 조하(朝賀)한다. 초하루, 보름에는 단지 왕에게만 조하한다. 지방관은 각각 봉임하고 있는 곳에서 진하(進賀)한다. 매월 초 5일, 11일, 21일, 25일에는 백관이 조참(朝參)한다고 하였다.

○ 정월 초하루

정조(正朝)가 되면 양반집 아이들과 부인들이 들어와 '신년문안 아룁니다. 만수무강하옵소서, ' 하고 세배를 드린다. 두 분 마마(순종, 윤비)께서는 보료에 앉아 계시다 손님들이 들어오면 꼭 일어나셔서 세배를 받으셨다. 종묘나 가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다례(茶禮)라 한다.

정월차례를 떡국차례라 함은 메(飯) 대신에 떡국을 올리기 때문이고, 차례를 지내느라 만드는 음식을 세찬(歲饌)이라 한다. 원단(元旦)의 절식은 흰떡, 떡국, 만두국, 약식, 약과, 다식, 정과, 강정, 전야, 빈자떡, 편육, 족편, 누름적, 떡찜, 떡볶이, 생치구이, 전복초, 숙실과, 수정과, 식혜, 젓국지, 동치미, 장김치 등이다.

순종은 무관, 시종들과 윤마마는 상궁나인들과 함께 윶놀이를 즐겨했는데 이긴 편 나인들은 모두 모본단과 같은 고급 피륙을 상으로 받기도 하였다. 그밖에 투호놀이와 궁낭(宮囊) 차기를 즐겼다.

○정월 대보름(上元, 望日)

정월 대보름을 상월 또는 망일이라고도 한다. 망일이 되면 선무사에서 호두, 잣, 밤, 대추, 황밤을 각각 한 가마씩 들여와 자줏빛 전박에 담아 두 분 마마께 바쳤다.

이 부럼들은 생과방에서 일일이 껍질을 까서 올렸다. 마마께 올리고 난 부럼은 은합에 한몫씩 담고 노란 삼팔겹보자기에 싸서 각 양반의 집으로 내보내셨다. 윤마마께서는 나인이나 생각시들을 불러서 삥 둘러 앉혀 놓고 잣불을 켜보도록 했다. 상원절식의 으뜸은 약식(藥飯)이다.

약식의 유래는 "신라 소지왕(炤智王)이 정월15일 까마귀의 일깨움으로 위기를 모면하니 그 은혜를 보답코자 찹쌀밥을 지어 까마귀에 대한 제사날로 삼았다. "고 《삼국유사》에 적혀 있다.

신라시대에는 약밥이 아니고 찹쌀밥이었는데 고려시대의 《목은집》을 보니 기름, 꿀, 잣, 밤, 대추 등을 넣어 만든 호화로운 음식이 되었다. 서민들은 이같은 약밥이 사치품이어서 대신 오곡밥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이 남게 된 듯하다.

그밖의 대보름 절식은 오곡수라, 묵은 나물(上元菜), 유밀과, 원소병, 작절(嚼癤, 부럼), 유롱주(爽聾酒, 귀밝기술), 복쌈(福裏), 팥죽(赤豆粥) 등이다.

○ 정월 고사(告祀)

정월 첫 오(午)일에는 시루떡을 쪄서 고사를 지내는데 이를 세시도신(歲時禱神)이라 한다. 붉은팥 시루떡(赤豆甑餠)을 만들어 시루째로 곳곳에 놓고 일 년 동안 무사평안하기를 비는 행사로 민가에서는 물론 궁중에서도 지낸다.

예전부터 상오(上午)일에는 마굿간에 제를 지내고 찬을 주어 위로하는 예가 있었다. 무오(戊午)일을 길일로 택하여 무시루떡을 하기도 하였다.

조선조 궁중에서 계묘(癸卯;1843)년 3월 26일 함령전(咸寧殿)에서 지낸 고사의 내용을 적은 발기를 살펴보면 우선 함령전 대청, 온돌, 우물, 앞뜰, 뒤뜰, 의대방, 세수간 등과 숙옹제의 대청, 복도, 동쪽뜰, 서쪽뜰 등과 성관헌의 앞뜰, 뒤뜰, 우물, 합문과 그리고 수라간, 퇴선간, 단고간, 이간방 등 전부 46개처이다.

고사음식은 주로 시루떡, 북어, 탁주 또는 약주의 세 가지를 주로 차리지만, 곳에 따라서는 백설기, 돼지머리, 소머리, 돼지다리, 실과, 호초차 등을 올리는 곳도 있다.

○ 입춘채(入春菜)

입춘날에는 궁중에 진산채(進山菜)라 하여 경기도의 산골 지방의 육읍(畿狹六邑)에서 움파, 산갓, 당귀싹(辛甘草), 미나리싹, 무싹 등의 오신반(五辛盤)을 진상하고 민가에서도 서로 선물을 주고 받았다.

○ 삼짇날(上巳)

조선시대에는 기로회(耆老會)를 교외에 나가 베풀었다. 중삼절에는 두견화전(杜鵑花煎), 화면(花麵), 수면(水麵)을 천신한다. 삼짇날의 절식은 청주, 육포, 절편, 녹말편, 조기면, 진달래화전, 화면 등이다.

○ 한식(寒食)

한식은 동지에서 105일째이며 이날 성묘를 한다. 민간에서는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의 네 명절에 제사를 올리고, 궁중에서는 여기에다 동지를 더하여 오절사(五節祀)라 한다.

술, 과일, 포,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을 차려 제사를 지낸다. 민간에서는 이날을 전후하여 쑥탕, 쑥떡을 해먹고 조상의 무덤에 떼을 입혔다.

○ 단오(端午)

단오날은 수리(戌衣), 수릿날, 천중절(天中節), 단양(端陽) 등으로 불리운다. 이 날은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부녀자들이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씻고, 창포뿌리를 뽀족하게 깎아 다홍칠을 해 양쪽 귀에 꽂기도 하고 생머리에 꽂아 모양을 냈다.

또 비녀를 만들어 주사로 수복(壽福)의 글자를 새겨 꽂기도 하였다. 조정에서는 지방 고을 수령들이 헌납한 부채를 신하들에게 하사하셨다. 이를 단오선(端午扇)이라 하였다. 내의원에서 옥추단(玉樞丹)을 만들어 금박으로 싸서 임금님께 바치면 이를 신하들에게 하사하셨다.

이것을 오색실로 붙들어매어 차고 다니면서 액막이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내의원에서는 제호탕을 만들어 임금께 진상하면 이를 연로한 공신들이 모인 기로소(耆老所)로 하사하셨다.

궁중의 단오 절식은 증편, 어알탕, 준치만두, 앵두화채, 제호탕, 생실과, 수리취떡 등이다. 수리취를 삶아서 절편을 찧을 때 함께 쳐서 수레바퀴 문양 떡살을 박아서 차륜병(車輪餠)이라고도 하고, 또는 쑥을 삶아서 넣기도 하여 애엽고라고도 한다.

○ 유두천신(流頭薦新)

유두날 아침에는 수단, 건단, 유두면 등과 수박, 참외 등의 햇과일과 피, 기장, 조, 벼를 조상께 천신한다. 궁중에서는 종묘에 천신한다. 수수피 나락을 가묘에 바치는 것을 천곡(薦穀)이라 하였다.

보리로 단술을 빚어서 바치기도 한다. 유두절식은 편수, 봉선화화전, 감국화전, 색비름화전, 맨드라미화전, 밀쌈, 구절판, 깨국탕, 어채, 복분자(覆盆子, 산딸기화채, 떡수단, 보리수단, 참외, 상화병(霜花餠, 기주떡) 등이다.

○ 사빙(賜氷)

사빙은 궁중에서 옛날부터 유월 중순경에 기로소와 각 관아에 얼음을 나누어 주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빙고는 동빙고와 서빙고가 있었다. 동빙고는 국가의 제사에 소용되는 얼음을 저장하였고, 서빙고는 한강하류 둔지산 기슭에 있는데, 이곳 얼음은 수라상에서 쓰이고, 또 백관에게 나누어 주었다.

○ 삼복팥죽

민간에서는 팥죽을 동지날에 쑤지만 궁중에서는 동지와 복(伏) 즉 초, 중, 말복에 번번히 쑤어서 온 궁중이 다 먹었다고 한다. 한말에 쓰던 솥이 지금 창덕궁 대조전 앞 월대 전면에 장식처럼 진열해놓은 청동 '부견주'였다. 이는 화로와 비슷한데 다만 양편에 손잡이 고리가 있고, 대신 발이 없다.

○ 칠석(七夕)

칠석날의 절식은 밀전병, 증편, 육개장, 게전, 잉어구이, 잉어회, 복숭아화채, 오이소배기, 오이깍뚜기 등이다.

○ 하절(夏節)시식

궁중에서는 정월에 남겨둔 흰떡을 다시 불려서 떡국을 끓여먹는다. 더위를 이긴다고 겨울 음식을 여름에 먹는다.

○ 한가위(秋夕,嘉俳)

추석을 가배 또는 한가위라고도 한다. 한가위의 절식은 오려송편, 토란탕, 밤단자, 갖은 나물, 가리찜, 배화채와 밤, 대추, 사과, 배, 감 등의 햇과일이다.

○ 중양절(重陽節)

중양절은 양수(陽數)가 겹치고, 구(九)가 겹친 날로 명절로 삼는다. 삼짇날에 돌아온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떠나는 날이다. 중양절의 절식은 감국전, 밤단자, 유자화채, 생실과 등이다. 유자화채는 배, 유자를 썰어 꿀물에 넣고 석류와 잣을 띄운 아주 향기 좋은 화채이다.

○ 추절(秋節)시식

추수가 한창이라 햇곡식이 풍성하니 인심도 후한 계절이다. 물호박떡, 무시루떡, 밤단자, 대추인절미 등이 떡과 토란탕, 토란단자 등을 만들고, 살찐 황계(黃鷄)로 백숙을 한다.

○ 타락죽(駝酪粥)

궁중에서는 시월 초하루부터 정월에 이르기까지 내의원에서 타락죽인 우유죽을 만들어 진상한다. 낙죽은 쌀을 갈아서 우유를 부어서 끓인 보양이 되는 죽이다. 우유는 서양문물이 들어온 이후에 식용이 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삼국시대부터 이 땅에서 우유를 음용한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 상설기관으로 우유소(牛乳所)가 있었으나 조선시대에 타락색(駝酪色)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의 동대문에서 동소문에 걸치는 동산일대를 타락산이라 하고 약칭하여 낙산(駱山)이라 하였다.

○ 동지(冬至)

동지는 밤이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조선조 궁중에서는 동지를 소명절(小名節)이라 하여 정월 다음으로 꼽았던 것은 사실이다. 궁중에서는 공적 의례로 백관이 하례를 드리고, 사적으로는 비빈을 비롯하여 궁녀들이 웃어른에게 문안례를 올리는 것이다.

문안례가 끝나면 궁녀들은 노소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날 하루 만은 자주저고리를 입는다고 한다. 관상감에서는 동짓날에 다음해의 달력을 만들어 나라에 올리면 모든 관원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책력은 일년 동안의 절후가 모두 명시되어 있어 일상생활에 긴하게 쓰인다.

민가에서는 붉은 팥으로 팥죽을 쑤고 찹쌀가루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고 꿀을 곁들인다. 가묘에 천신하고 팥죽을 문짝에 뿌리면 액을 막는다고 하여 성행하였으나 근래에는 팥죽을 먹는 것으로 액땜을 한다. 동지의 절식은 팥죽, 전약, 식혜, 수정과, 동치미 등이다.

○ 동짓달 천신

청어의 산지는 통영과 해주인데 겨울과 봄에 진상한다. 이를 종묘에 천신한다. 또한 통영에서 잡은 생전복과 대구를 궁중에 진상한다.

제주목사는 귤, 유자, 황감 등을 진상하며 임금은 이를 태묘에 천신하고, 드시고 신하들에게도 하사하신다.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유생들에게 과거를 보이고 귤을 나누어주니 이것을 황감제(黃紺製)라고 한다.

○ 동절절식

냉면은 추운 겨울의 시식으로 꼽힌다. 한말에 고종께서는 특히 면을 좋아하시어 야참으로 냉면을 즐기셨다고 한다. 고종은 매운 것을 못드시니 냉면의 꾸미는 편육, 배, 잣 뿐이었다고 한다. 국물은 육수가 아니고 시원한 동치미말국에 배를 많이 넣어 담근 것이라 무척 달고 시원했다 한다.

○ 납일(臘日)

납일(臘日)은 동짓날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로 그해 농사 형편과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신에게 고하는 제사를 납향(臘享)이라고 하고, 수렵이 해제되는 때이다.

궁중에서는 왕이 수렵 행차 납신다는 통고가 있으면 사냥터에서 잡수실 음식은 소주방에서 차려가지고 나가게 되고, 수렵에서 돌아오시면 노루, 산돼지, 메추리, 꿩 등 잡아온 고기들로 전골을 만들어 잔치를 베푼다.

수렵한 산짐승, 산새 등으로 만든 전골을 특히 납평전골이라 부르며 납일에 수렵해온 금수의 고기는 모두 맛이 좋다. 종묘의 납향 때 납육(臘肉)으로 산돼지와 산토끼를 썼다. 경기도 내의 산간의 군에서는 납향에 쓰는 산돼지를 조달하기 위하여 그 곳 수령들은 군민들을 동원하여 산돼지를 수색하여 잡았다고 한다.

○ 섣달 그믐날 무장과 팥죽

섣달 그믐날 새벽 궁중에서는 왕과 왕비를 위시하여 아래 하인들까지 '무장'이라 하는 일종의 '날 메주'국물을 마신다. 백항아리에 소금물 끓인 것을 식혀담고 거기에 메주를 뚝뚝 떼어넣었다가 우러난 물을 마시는 것이다.

이는 섣달 그믐에 묵은 해를 보내면서 새해를 맞이하기에 앞서서 벽사의 목적인 듯하다. 고종 때에 김명길 상궁의 이야기로는 왕 내외분이 꼭 마셨다고 전한다.

○ 세찬(歲饌)

조선시대에는 각 지방에 내려간 절도사(節度使), 각 도백(各道伯) 수령들은 궁중과 고관 친지에게 토산물을 증정하고 세찬의 세찬단자를 바쳤다.

이것을 총명지(聰明紙)라 하였다. 세찬이 토산물이 아닌 경우에는 떡쌀, 술쌀, 두부콩, 메밀쌀이고, 세육(歲肉)으로는 쇠고기, 꿩고기, 북어, 참새 등이 좋으며, 과품으로는 밤, 대추, 곶감, 엿강정 등을 선사하였다.

조선시대에 백성의 교화와 국가경제의 균형을 위하여 함부로 술을 빚지 못하게 주금(酒禁), 소나무를 마음대로 베지 못하게 한 송금(松禁), 소를 함부로 잡지 못하게 하는 우금(牛禁)의 세 가지를 국가에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섣달에는 우금을 풀어서 연말 세찬과 차례를 위한 육류의 수요를 충당하였다고 한다.

○ 탄일(誕日)

순종의 탄일은 2월 19일로 궁중에서는 정조(正朝) 다음가는 큰 명절이었다. 음식을 한자(30㎝)높이로 괴고 이왕직 아악부에서 북, 장구, 해금, 피리, 대평소를 갖고 들어와 육각(여섯 가지 국악기로 음률을 했다는 의미)을 잡혔다.

궁녀들은 어여머리를 하고 5∼6명씩 짝을 지어 나란히 서서 절을 했다. 덕수궁 계신 고종께서는 각종 피륙을 죽상자에 가득가득 담아 생일선물로 보내시곤 하였다. 탄일에 차린 어상은 동그란 소반에다 한 상씩을 차려 양반집으로 하사하는 일도 잊지 않으셨다고 김명길 상궁이 술회하였다.

출처 한국의 전통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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