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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조현기문서꾸미기
작성자 조현기 등록일 09.09.14 조회수 13
 

 

 늦었지만 ㄳ

영국사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1397번지

 

영동 제일의 명찰 영국사는 영동군 소재지 영동읍에서 서쪽으로 약16.6km 정도 떨어진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때의 고찰이다. 고려문종 때 대각국사가 국청사라 했던 것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곳에서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안정된 삶을 기원함으로서 국난을 극복했다 하여 영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웅전 보수공사를 하느라 대웅전의 주불이 모셔져 있던 만하루는 예전의 모습을 되 찾았다. 이 누각은 정면 5칸 측면3칸이고 겹처마팔작지붕의 멋스러운 누각이며, 대웅전의 고풍스러움과 단아한 삼층석탑이 있는 절집마당으로 가려면 누각의 아래로 가거나 왼쪽으로 돌아가도 같은 장소로 이어지지만 눈높이의 차이에 의해 풍경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만하루 아랫길은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맞이하는 대웅전과 삼층석탑의 풍경이 그렇고, 만하루 왼쪽으로 돌아드는 길은 만하루 추녀 아래로 펼쳐지는 대웅전과 삼층석탑의 풍경이 그렇다. 만하루 아래를 통해 가거나 옆을 지나서 절집 마당에 서면 보수를 끝내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 대웅전은 예전 모습 그대로이다.

 

단청을 새로 해서 그런지 수리하기 전에 보았던 고색은 찾을 길 없지만, 처마를 받치고 있는 화려한 공포가 돋보인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집인 이 대웅전은 대웅전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쪽 마당 보리수나무 아래 서서 바라다보면 삼층석탑과 어우러져 고풍스런 절집 천년고찰영국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볼 수 있다.

 

1.영국사 부도

 

종 목 보물 제532호

지 정 일 1971.07.07

시 대 고려시대

 

부도는 영국사 안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부·탑신부·머리장식부로 나뉘어지며 전체적으로 8각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기단의 아래받침돌은 바닥돌과 한 돌이고 가운데받침돌은 8각의 면마다 무늬를 조각하여 넣었다. 윗받침돌 옆면에는 한 겹의 연꽃잎을 위아래로 장식하였다. 탑신에는 한 면에 직사각형의 문짝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 모양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의 각 면에는 기왓골을 본떠 새겼는데 처마의 곡선과 잘 어울려서 경쾌한 인상을 준다. 머리장식으로는 복발과 보주가 남아있다.

 

이 부도가 세워진 연도는 절 안의 원각국사비와 연관지어볼 때 고려 명종 10년(118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2.영국사 삼층석탑

 

종 목 보물 제533호

지 정 일 1971.07.07

시 대 신라

 

이 탑은 영국사 대웅전 앞에 서 있으며,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춘 완전한 형태이다. 위·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위층 기단의 무늬는 모서리까지 침범할 만큼 크고 넓다.

 

기단 맨윗돌에는 네 모서리 끝부분에서 약간의 치켜올림이 있어 주목된다. 탑신부는 각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놓았으며,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있는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네 귀퉁이는 바짝 치켜올려진 상태이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각 4단씩이다.

 

이 탑은 기단과 탑신부가 간결하여, 조형 미술품의 규모가 작아지고 양식도 간략화되던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3.영국사 원각국사 비

 

종 목 보물 제534호

지 정 일 1971.07.07

시 대 고려시대

 

영국사 경내에 있는 비로, 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원각국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선사·대선사가 되었던 명승으로, 명종 4년(1174)에 입적하자 왕은 그의 유해를 영국사에 안치하였다.

 

비의 형태는 거북 모양의 비받침인 귀부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릿돌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귀부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양식을 보인다. 용의 머리를 형상화한 거북 머리는 퇴화되었고, 거북등의 6각형 무늬와 비를 끼워두는 곳의 덩굴무늬는 생략되었다. 비몸은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있으며 훼손이 심하다. 비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이 형식적으로 새겨져 있고, 앞면 중앙에는 ‘원각국사비명’이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시대적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몸에 비하여 비받침이 커서 안정감을 주는 반면, 비머릿돌이 지나치게 커서 중압감을 주고 있다.『대동금석서』에 의하면 비문을 지은 이는 한문준이고, 건립연대는 고려 명종 10년(1180)이다.

 

7.영국사 석종형부도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4호

지 정 일 1996.01.05

시 대 고려시대

 

영국사 내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뒤쪽에 서 있는 승려의 사리탑으로, 모셔진 사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8.영국사 원구형부도

 

종 목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5호

지 정 일 1996.01.05

시 대 고려시대

 

영국사 내의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사리탑으로, 사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알수가 없다.

 

탑의 기단부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8각의 아래받침돌을 세우고, 역시 8각의 윗받침돌을 올려놓은 구조이다.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을 얕게 새겼고, 위가 반듯한 윗받침돌은 밑으로 한겹씩의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신의 몸돌은 둥근 공모양이며, 지붕돌은 8각으로 여러 조각들이 생략되어 밋밋하고 투박하다. 지붕돌 위로는 꽃봉오리모양을 한 머리장식을 올려 놓았다.

 

각 부분의 조각들이 생략되거나 간략화되고, 연꽃잎이 한겹으로 되어 있어 고려말·조선초의 작품으로 보인다. 원각국사비 뒷편에 있는 것으로 보아 원각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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