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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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준한 | 등록일 | 19.01.03 | 조회수 | 4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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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들 상감기법의 사용 기물의 표면에 금ㆍ은ㆍ보석ㆍ자개 등 다른 재료을 넣어 나타내는 문양기법 천산대렵도 고려 공민왕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수렵도. 주악천녀도 불화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이 사는 정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백의관음도 부석사소조여래좌상 높이는 2.78m로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또한 온몸이 금빛 찬란하여 매우 정교한 솜씨로 지어졌는데, 고려시대 유일의 소상(塑像, 흙으로 빚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건립 연대나 자세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과 같다. 소조인 만큼 모델링이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과 위엄을 동시에 갖춘 조상이다. 불상은 토심(土心)에 칠금(漆金)을 입혔고 광배(光背)는 목판 위에 흙을 입힌 것으로 풍만한 얼굴과 두 어깨, 그리고 의첩(衣褶) 등에 소조의 특색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천의의 주름은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같은 신라 말기 형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더 정연하게 되어 있으며 굵은 입술과 광배만 아니면 신라 말기까지 연대를 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춘궁리철조석가여래좌상 고려 시대로서는 예외적으로 큰 불상이다. 얼굴 모습이나 손(手) 모양, 자세, 편단우견(偏袒右肩)의 천의의 모습과 주름 등 모두 석굴암의 본존상을 충실히 모방하고 있어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보아 왔으나 지나치게 긴 눈, 예리한 눈썹, 입술의 윤곽 등 추상적인 경향이 뚜렷한 점, 또 최근에 원 소재지에서 고려 시대의 안상(眼象)을 새긴 석불좌(石佛座)가 발견된 점 등으로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심증을 굳히게 되었다. 신라 불상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고려 초기의 복고적인 특색을 보이는 작품이다. 관촉사미륵불 머리에는 구름무늬 같은 머리카락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윗부분의 관까지는 정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고, 관은 8각형으로 깎았다. 그 위에 2중의 보관을 올리고 관의 네 귀에는 청동제 방울을 달았다. 얼굴은 이마가 좁고 턱이 넓은 역제형(사다리꼴)으로 눈이 옆으로 길게 돌아갔고 코, 입, 귀는 모두 크고 토속적인 느낌이다. 굵은 목에는 3도가 있고,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좁은 어깨에는 가로무늬가 있고 몸중앙으로 몇 개의 U형 옷주름을 둘른 단조로운 무늬의 법의가 걸쳐져 있고, 양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한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데 이는 아미타여래의 중품하생인을 표현한 듯하다.[4] 눈코입은 과장되어 있는 무정형의 안면으로 턱밑에 음각선이 비만해 보이고, 불신은 어깨와 동체 폭이 같은 석주형으로 4등신의 비사실적 비례로 서민에게 친밀감을 준다. 평야지대의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우뚝 서있어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나 길을 가는 행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불상조각 보다는 정교하지 못하나, 규모의 장대함이나 고려시대 독자적인 특이한 양식으로 토속신앙과 불교가 혼합된 석불상이다. 안동이천동석불상 자연암벽에 신체를 선으로 새기고 머리는 따로 올려놓은 전체 높이 12.38m의 거구의 불상이다. 이러한 형식의 불상은 고려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는데,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보물 제93호)도 이와 거의 같은 수법을 보여준다. 월정사8각9층석탑 고려 중기 다층석탑의 대표적인 예로 전체 높이는 15.15m이다. 하성기단의 갑석에는 연화문이 새겨지고 옥개석(屋蓋石)에는 층급 받침 대신 백제식 석탑에서 볼 수 있는 각(角)과 원(圓)의 2단받침을 쓴 것이 특이하다. 경천사지10층석탑 국보 제86호로,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드문 대리석으로 만든 불탑이다. 지광국사현묘탑 부석사 무량수전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건축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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