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김준서(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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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4-4 김준서(10) | 등록일 | 24.11.15 | 조회수 | 6 |
제목'안창호' 안창호가 조선 왕조 5백년 역사의 끝맺음에 가까운 무렵인 878년 11월9일에 우리나라의 북서쪽인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칠리라는 봉상섬에서 태어났다. 안창호의 아버지 안홍국은 그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안창호 선생이 아주 평범한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듯 태어나서 5살때 까지의 일을 남겨지거나 전해지고 있지 않다. 예로부터 대동강은 버들이 아주 많기로 유명하다. 안창호가 배가고파 힘없이 밭두렁에 앉아있었는데 아주 단 냄세가 맡아왔다. 그래서 가봤더니 참외냄세였다. 아주 배가고파 어떻게 먹을지 생각하다가 우리 할아버지가 날 때리려고 온다고 해서 참외 아저씨가 고민하다 들어가라 했다. 그래서 들어가서 숨는 척을 하고 숙여서 참외를 실컷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안창호는 어렸을때 산에서 놀는걸 좋아해서 그래서 집에 올때마다 맞을 생각에 떨며왔다고 한다. 그리고 안창호가 대한제국이란 이름을 쓰고 이런 쓸모없는 대한제국 껍데기라고 한다.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폭탄을 던진 윤봉길의사는 상하이 홍커우에서 붙잡혔다. 윤의사가 한국인일걸 알은 일본 경찰들이 한국사람들을 보는대로 마구 붙잡았다. 그래서 김홍일장군은 상하이에 있는 모든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공공 조계지에 있는 미국인 피치박사 댁을 피하라는 연락을 하도록 하였다. 도산은 그 말을 듣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잡혀 프랑스 경찰로부터 상하이 일본 영사관의 경찰로 넘겨졌다. 도산 선생은 3주일이나 그곳에 갇혀있다가 배를 타고 상하이를 떠나 6월7일에 인펀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심문을 한달정도 받고는 서울 서대문형문소로 넘겨졌다. 그리고선 더 많은 벌을 받고 한사람씩 차례대로 옷을 벗고 알몸으로 나서면 기다란 호스를 든 간수는 얼을같이 찬 소독물을 내쏘는것이였다. 모두 체면이고 뭐고 비명을 질러댔다. 드디어 도산선생의 차례가 다 왔다. 병들어 아픈몸에 3개월동알이나 유치장생활을 한 도산의 모습은 병들어 처참하였다. 도산은 앙상한 몸에 세차게 뿌려대는 물 때문에 금방이라도 쓰러질것같았다.도산은보기와 같이 얼굴 하나 찡구림하나없이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꼿꼿이 서서 물세례를 받은것이였다. 도산은 병이 악화되어 서대문 형무소 감방에서 병실감방으로 옮겨 졌다. 도산은 이듬해인 1938년3월10일에 도산은 조국 광복의 큰뜻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나의 생각은 이 책 너무 길지만 전기문이여서 긴건 알지만 그리고 읽게된 이유는 수행평가가 있어서 도서관에 갔는데 바로 보여서 봤다. 안창호 선생님 정말 대단한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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