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현충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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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병숙 | 등록일 | 09.01.02 | 조회수 | 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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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 충주보훈지청(지청장 김창석)에서는 우리고장의 현충시설을 지역민들에게 알리고 더불어 나라사랑의 교육장으로 널리 활용하고자 매월ꡐ이달의 현충시설ꡑ을 정하여 홍보하고 있다. 이에 1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로 충주지역의『독립유공자추모비』를 선정하였다. 충주시 이류면 대소리 도로변에는 독립유공자추모비가 우뚝 서있다. 높이 8m의 위용을 자랑하는 추모비는 이류면 출신 독립운동가이신 유자명, 서정기, 이일신 선생 등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키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5년 이류지역발전협의회의 주도로 건립된 우리고장 현충시설이다. 2006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한 유자명 선생은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에 충주 간이농업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학생중심의 시위 계획을 준비하던 중 일경의 밀정에게 사전 탐지되자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에서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 충청도 대표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는 한편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과 동척(東拓)을 습격한 나석주(羅錫疇)의 소개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36년에는 중국군과 합류하여 전시공작대(戰時工作隊)로서 항일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942년에는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약헌개정기초위원(約憲改正起草委員)을 역임하였으며, 1943년 3월에는 임시정부 학무부 차장에 임명되었고 광복 시까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일신 선생은 1929년 12월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 재학 시 광주학생운동의 전국확산에 계기가 되었던 서울지역 동맹휴교(同盟休校)에 동참하였다. 이일신은 강대성(姜大成) 등과 함께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을 조직하여 격문의 인쇄 배부 및 동맹휴학·만세시위 등을 주동하였다. 이 사건으로 1년 정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서정기 선생은 1925년 1월에 충주에서 뜻 맞는 동지들과 회합하고 서울에서 무정부주의 계통의 항일비밀결사인 흑기연맹(黑旗聯盟)을 조직하여 무정부주의의 연구와 선전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충주(忠州)군 충주면 읍내리 금성여관(金星旅?)에서 동지들과 함께 문예운동사(文藝運動史)라는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잡지 「문예운동(文藝運動)」을 간행하려고 활동하다가 다시 일제 경찰에 피체되어 징역 5년 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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