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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 명재상 황희
작성자 최용원 등록일 15.01.31 조회수 110

 황희는 다섯살때부터 서당에 다니며 글공부를 했어요.

고려의 신하였지만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갔어요.  조선의  태조의 간절한 뜻을 받아들여

성균관에 학관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형조, 병조, 예조, 이조판서를 지내셨고

세자를 바꾸는 것에 반대하여 귀향을 5년 동안 사셨어요.

세종이 왕위에 어르자 귀향에서 풀려나 영의정에 오르고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바른정치를 하는데 힘을 쓰셨어요.

임금이나 신하들에게는 할 말을 하는 대쪽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언제나 가난한 백성을 생각

하여 늘 검소하게 생활하셨답니다.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신하이신 황희선생님이십니다.

나도 이분을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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