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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
작성자 이정민 등록일 15.01.19 조회수 100

나는 오늘 장영실을 읽었다.

 장영실을 읽기 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귀찮았는데 장영실을 읽은 후에는 장영실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에디슨, 아인슈타인 같은 더 유명한 발명가,발견가들 보다도 장영실이 더 뛰어난 것 같다.

에디슨인나 아인슈타인은 어렸을 때 과학에 대한 호기심만 있었을 뿐 실제로 발명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영실은 어렸을 때 가뭄 때문에 농작물이 모두 죽어가던 때 수차를 발명하여 마을을  살렸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세종대왕의 부름으로 대궐에서 일을 했고,

 천한 노비 신분에서 높은 벼슬을 받았다.

 장영실은 우리나라 최초로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구인 간의를 만들고,

백성들이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도록 20여만자가 넘는 갑인자를 만들었다.

또, 우리나라 최초로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와 빗물을 받아 비의 양을 잴 수 있는 측우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라의 전쟁에서는 철 뿐만아니라 금까지 묻혀있는 광산을 찾았다.

몇년이 지나 세종대왕이 새가마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나무를 구하려 하는데 어떤 신하가 나무를 갖다 주었다.

장영실은 아무 낌새도 눈치채지 못하고 가마를 만들었다.

좋은 날씨에 가마를 탄 세종대왕은 마음이 설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어서 한 신하가 비틀거리더니 가마가 쓸어지면서 세종대왕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충성심 깊은 장영실이 너무 좋아서 쫓아내기 싫었던 세종대왕은 신하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영실을 쫓아냈다.

하지만 장영실은 아무도 탓을 하지 않았다.

귀양을 계속 해서 하던 도중 왕에게 다른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만들고 세종대왕이 죽을 때 까지도

세종대왕을 자신이 죽을 때까지 보살피겠다고 하였다.

 곤장도 80대나 맞았다. 그래서 쫓겨난 장영실은 어디로 갔는지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장영실이 너무 존경스럽다. 충성심 크고, 백성을 사랑하는 장영실을 너무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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