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대단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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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연상헌 | 등록일 | 15.06.22 | 조회수 | 134 |
현재 한국인에게 한국의 최고의 장수(무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항상 첫번째로 꼽히는 인물, 한국인이 존경하는 위인으로는 세종대왕과 함게 늘 1~2위를 다투고 있다. 사용되는 원화중에 100원 동전의 앞면에 초상화가 있고, 그 전에도 구 500원권 지폐에 등장한 적이 있다. 이순신의 분신인 거북선은 1953년 10환, 100환,1000환권에 등장하였고, 이순신 동상은 1958년 50환권에 처음 모습을 보였다. 무인답게 검을 사랑했다. 이순신이 실전에서 사용한 칼인 쌍룡검의 행방은 근 100년째 며느리도 모른다. 다른 이순신의 검은 '현충사'라는 절에 소장되어 있다. 약 2m에 가까운 길이 때문에, 오래전 부터 이순신의 키는 2m 50cm(...) 내외가 될 것이라는 말이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대체로 170cm 전후의 키로 보는 중. 위가 상당히 안 좋았으며, 그 밖에 여러가지 병을 앓고 있었고, 난중일기 중에 "아팠다"는 기록만 찾아도 수십 차례가 넘는다. 이순신의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은 활쏘기와 음주, 그리고 조선시대판 인생게임이라 할 수 있는 승경도놀이였다. '난중일기'를 보면 의외로 부하 장수들과 함께 '승경도놀이'를 즐기는 기록도 제법 자주 나타난다. 난중일기를 보면 활쏘기는 대개 15발중 10~11발 정도 명중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 기록을 근거로 이순신의 무예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 당시 무인들의 기록의 평균에서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까다로운 상관이었고, 이순신 휘하의 조선 수군은 유독 엄격한 군율을 가진 걸로도 유명했다. 어느 정도로 가혹했냐면,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보다 이순신을 더 두려워했으며, 전사자보다 군율에 의한 처형자 숫자가 더 많았다. 현재 동전에 나와있는 것을 비롯하여 널리 알려진 이순신의 영정은 모두 상상한 것으로, 유성룡이 징비록에서 쓴 '용모가 단아하고 정갈하였다.(容貌雅飭)'는 묘사에 근거하여 그 이미지대로 그려져 있다. 이에 비판도 만만치 않은데, 가토 기요마사는 참으로 장군의 용모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에 이순신은 무장의 이미지가 강함을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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