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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안중근기념관
작성자 김선영 등록일 12.11.14 조회수 338

서대문형무소는 1912년 마포 공덕동에 대규모 감옥이 신축되자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1923년5월5일 서대문형무소라고 바뀌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근현대 우리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상징하였던 서대문형무소를 보존,전시하고있는 역사관입니다. 전시관2층에는 민족저항실은 대한제국말기부터 1919년까지 서대문형무소와관련된 독립운동과일제의 탄압실상을 전시하고있습니다. 이 만큼만해도 우리나라는 큰손해를 입었다. 전시관 지하는 지하고문실이 있는데 그곳은 일제강정기보안과청사의지하 취조실이다. 독립운동가 취조과정에서자행되었던 각종고문의 실상을 전시하고 있으며, 생존독립 운동가의 유겅증언을 통해 폭압적인 식민지통치의 실상을 볼수있다. 종류가 물고문,상자고문등의 고문이 많다. 이걸 보니까 분하고 슬프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다음으로 안중근의사 기념관이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에 태어낫고 항일독립운동의명가로 15명의독립운동의 공로로 서훈을 받았으며, 안중근 의사께는 최고훈장인 전국훈장에 대한 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안중근의사의 가족분들은 거의 독립운동가였고 1897년부터 입교한 후 수년간 독실한 신양인으로서 천주교 전파활동을 하였다.   또 교육활동으로 돈의학교를인수하고 삼흥학교 교장이괴어서 학교를 운영하였다. 황해도에서는 안중근의사랑 백범김구가 태어났다. 안중근의사는 독립운동활동을 하면서 다른 동무들이 주어가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손가락을 잘랐다. 이것을 단지동맹이라고 한다. 1909년10월26일에 하얼빈역에서 이토호로부미를 살해하였다. 그래서재판을하게되었다. 대한의 군참모중 장의자격으로 행한것이므로 만국공법에 의해 처리해줄것을 주장하였지만 일본법정은 1910년2월14일에 사형을 언도한다. 이 사건으로 애국심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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