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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안중근의사 기념관
작성자 이소희 등록일 12.11.14 조회수 271
처음에 우리는 서대문형무소에 갔다. 우리나라는 1910년에 강제병합이 되어 나라를 뺏기는데 1919-3.1운동이나 1926-6.10만세 운동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독립운동가들을 이곳 형무소 뿐만아니라 전국에 가둬두었었다. 우리는 형무소 안에 있던 감옥이나 사형장들을 돌아다니며 지하실도 가보았는데 지하실에서 물고문을 받는 장면은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것을 보았다.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고문을 했다는데 지금은 전등도 놓고 깨끗하게 치워 놓았지만 옛날엔 정말 어둡고 춥고 더러워서 먹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물고문을 받는 사람들은 정말 고통스럽고 무서웠을 것 같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시구문이라고 독립운동가를 사형시킨 후 외부에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시신을 바깥으로 몰래 반출하기 위해 200m가량 뚫어 놓았던 비밀통로도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형무소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성함을 적어놓은 추모비앞에서 묵념을 하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향했다. 을미조약을 하여 강제라 나라를 뺏기고 정미조약으로 군사권까지 뺏겼던 우리나라는 안중근 의사가 군인이 되어 첫번째 작전에 성공하여 많은 일본인을 무찌르고 두번째 작전을 하는데 그때 안중근의사가 포로로 잡아두었던 일본군을 풀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안중근의사를 배신하고 자는 사이에 침입을 하여 안중근의사의 300명가까이 되는 부하를 잃었다. 그것에 죄책감을 느낀 안중근의사는 자신의 네번째 손가랄 한마디를 잘라 단지동맹을 한다. 그리고 나서 안중근 의사는 그당시 러시아인 하얼빈역에 가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형무소로 잡혀가 32살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게 되었다. 서대문 형무소와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일본인들이 좀 나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 자신들도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시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나라를 사랑하셨던 애국자분들을 정말로 존경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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