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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전쟁영웅 - 고태문 육군대위
작성자 김은정 등록일 13.11.11 조회수 239


“제가 제일 마지막에 떠나겠습니다.”

11월의 6∙25전쟁영웅은 6∙25전쟁 당시 강원도 고성군에서 적으로부터 351고지를 지키고자 위기의 순간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지도력을 발휘했던 고태문 육군 대위입니다.

고태문 육군대위는 1929년 1월 제주도 북제주군에서 태어나 1941년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에 입대합니다. 그는 대한민국 육군으로써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토 방위에 몸을 사리지 않았는데요.

1951년 8월 24일 제11사단 제9연대 7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할 당시에는 펀치볼 동부의 884고지 탈환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또한, 1952년 11월 제5사단 27연대 9중대장으로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351고지를 점령 방어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2개 중대 규모의 적에게 공격을 받게 되는데요. 제1차 공격은 다행히 방어하였지만 재차 공격해 온 적의 방어에는 실패하여 곤경에 처하고 맙니다.

그러나 고태문 대위가 이끄는 중대는 죽고 사는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는 피의 살육전을 벌였고,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혀 마침내 적을 격퇴시키고 맙니다. 이처럼 고태문 대위의 과감한 육탄공격을 계기로 884고지를 다시 확보할 수 있었는데요. 이 전투로 인해 전선에서 적의 위협을 제거함은 물론, 군단이 목표로 한 펀치볼 동쪽에서 포위 태세를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적과 아군이 뒤섞여 있는 상태에서 중대의 철수를 지휘하기는 쉽지 않았는데요.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부하들의 철수작전을 지휘하며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태문 대위는 ‘진지를 고수하라’ 는 마지막 명령만을 남긴 채 끝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연대는 작전대로 고지에 포화를 퍼부은 뒤 역습을 감행했고, 351고지를 재탈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고태문 대위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책임을 다했고, 그러한 그의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값진 승리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적을 기려 정부에서는 1952년 11월 육군 중위에서 육군 대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1952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고태문 육군 대위는 6∙25전쟁 당시 목숨을 잃을 위기 속에서도 부하들을 먼저 철수 시키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는 마지막 명령만을 남긴 채 끝내 전사하고 말았지만, 그의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값진 승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보다 타인을, 그리고 국가를 지키고자 했던 고태문 대위를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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