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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현정건(玄鼎健)선생
작성자 성복련 등록일 12.12.01 조회수 153

12월의 독립운동가 현정건(玄鼎健)선생

(1893. 6. 29. ~ 1932. 12. 30.)

◈ 단결투쟁의 염원을 실현한 민족유일당 운동의 산파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현정건 선생의 순국 80 주기를 맞이하여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 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상해 인성학교의 교사로서 청년들을 교육하고,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의 역량을 결집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선생은 대구 출신으로서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1919년 9월 17일 보선되어 임시정부의 국사처리를 위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1월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될 때 고려공산당 상해파의 일원으로 윤해·신숙 등이 주동이 된 창조파에 속하여 활동하였으나, 조선공화국 건국을 결정하고 임시헌법, 국호 등을 제정하자 뜻을 바꾸어 이러한 일은 전민족의 의사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 하였다.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 계파간의 이견조정에 힘쓰는 등 민족우선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6월에는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오는 국내 학생들이 언어와 풍속에 익숙하지 못하여 중국 사회에 적응치 못하고 상급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는 실정에 놓이게 됨을 타개하고자 김규식의 제안으로 인성학교내에 예비강습소를 개설하였을 때 김규식·여운형과 함께 영어과목을 담당하여 교수하였다. 그 후 상해고등보통학교로 개편 되자 여운형· 김종상과 함께 전임교사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1924년 11월에는 상해에서 윤자영이 조직한 청년동맹회에 가입하여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5년 9월 8일 중국 상해교민단의사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10월 10일 중국사정연구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에 선출되었으며 동년 11월 상해에서 의열단 창립 제9주년을 맞이하여 재중국국민에게 격문을 발표하면서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1927년 4월 11일 상해에서 독립전선의 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하여 한국유일 독립당 상해촉성회를 조직하여 집행위원이 되고 동년 10월에는 상해에서 한국독립당 관내촉성회연합회를 조직할 때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28년 봄 상해 프랑스 조계 패륵로 항경리에서 상해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게 피체되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동년 12월 12일 소위 치안유지법,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0일 만기출옥 하였으나 출옥 후 6개월 만인 1932년 12월 30일 옥고의 여독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향년 40세로 사망하였다.

선생은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수립에 참여하여 민족우선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를 조직하여 독립전선의 역량을 총집결하는 등 산파역할을 통하여 해외 독립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9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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