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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 4월 19일
작성자 김은정 등록일 12.04.12 조회수 123

4·19 혁명(四一九革命)은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입니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시위대 중에서 3월 18일 경 실종되었다가 4월 11일 마산만 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면서 시위는 격화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책임을 지고 하야했으며 부통령 당선자 이기붕의 일가족은 사퇴 후 동반자살하였습니다. 일본의 민중운동인 안보투쟁에도 영향을 준 혁명입니다. 4·19 민주혁명 혹은 4·19 학생운동, 4·19 의거, 4월 의거, 4월 혁명, 미완의 혁명 등으로도 일컫습니다.

시위가 계속 되는 동안 곳곳에서 경찰의 사격발포가 자행돼 수십명의 학생들이 죽고, 수백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시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 경무관(현 대통령 경호실장급)은 곡사포를 동원하여 학생들을 진압하여 막았으나, 곡사포는 곧 무너졌습니다. 경무대 정문을 부순 순간에, 갑자기 군인들이 덮쳐서, 여기서도 많은 학생들이 희생당했습니다. 한편, 시내의 시위대는 경찰차를 전복시키고 경찰서에 불을 질렀습니다. 재선거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당황한 제1공화국정부는 오후 3시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요구가 워낙 강해서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을 가게 됩니다.

 

<4.19혁명의 의미>

1. 민주주의는 가열찬 투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이것만이 가치있다는 것을 경험한 점

2. 혁명의 성공으로 외국으로 하여금 우리 민족을 높이 평가하게 하였다는 점

3. 혁명은 부정선거가 원인이나 근본정신은 20년간 누적된 부패정치와 사회악에 대 한 항거였다는 점

4. 혁명으로 구체제가 무너지고 새 민주체제가 성립했다는 점

5. 혁명으로 시민의 전체적인 개혁이 시작되는 동시에 한국 학생들의 정치, 도덕 적 갱신과 성숙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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