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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
작성자 성복련 등록일 11.04.05 조회수 170
 

당신의 나라사랑이 대한민국을 키워갑니다.”


【2011년 4월 이 달의 독립운동가】



조완구 선생 (1881.3.20. - 1954.10.27.)

◈1989. 건국훈장 대통령장◈


 조완구 선생은 서울 계동 명문가 집안에서태어나 1902년 한성법학전수학교를 마치고 내부 주사에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게 국권을 침탈당하자 관직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의 길로 나섰다. 시종무관장 민영환의 자결과 처남인 금산군수 홍범식의 경술국치로 인한 자결 순국도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선생은 관직을 그만두고 대종교에 들어갔다. 대종교는 을사오적암살단을 조직하였던 나철이 창시한 것으로 단군을 섬기는 민족종교이자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상징적 존재였다. 선생은 대종교의 간부로 활동하다가 1914년 북간도로 망명, 독립운동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국'임을 선포한 독립선언이 발표되자 북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선생은 이동녕 조성환 김동삼 조소앙 등과 함께 상해로 갔다. 민족의 대표기구인 임시정부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한 대표 인사를 29명으로 구성하였는데 선생도 일원이 되었다. 이들은 먼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하여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이후 27년간 임시정부와 함께 활동하였다. 임시정부 수립당시 각원들이 취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무원 위원으로서 임시정부의 활동 방향을 밝히는 등 임시정부의 기초를 세웠다. 이후 1921년 내무장에 선임된 이래 줄곧 내무부의 책임을 맡았고 1944년 좌우연합정부가 구성되었을때에는 재무부장을 맡았다. 이와 더불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그리고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의 주요 간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임시정부가 어려울 때 그것을 지켜온 상징적 인물이다. 1930년대 중반 민족혁명당 결성을 계기로 무정부상태에 빠졌을 때에는 김구 이동녕 송병조 차리석 등과 함께 다시 임시정부를 일으켜 세웠다.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존속한 27년 동안 한시도 임시정부를 떠나지 않았다.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끝까지 지켜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조완구 선생이다. 선생은 체구가 작다.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27년 동안 임시정부를 지켜낸 거인이었다. 선생은 광복 이후 환국하였다가 6.25당시 납북되어 1954년 10월 27일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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