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5학년 6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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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민경 | 등록일 | 17.01.31 | 조회수 | 321 |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군 백운방 텃골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생활을 하는 농부 부모님 아래 독자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글공부를 하여 과거시험에 응하기로 하고 열심히 하였는데. 해주에 임진경과라는 과거를 보게 되었는데 관리들이 돈을 받고 대리로 시험을 보게 해주는 것을 보고 두번 다시 과거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집으로 돌와 왔다. 김구는 병서를 읽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고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는 구절을 가슴 깊이 새겨 두었다. 1893년 김구는 오응선으로부터 동학을 접하고 교도가 되었다. 1894년 전봉준이 전라도에서 벼슬아치들이 백성의 재물을 빼앗고 못된 짓을 하자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켯고 김구는 황해도 해주에서 동학군을 일으켰다. 그러나 관군에게 패하여 숨어다니 다가 안중근의 아버지를 찾아가 생활하였고 그곳에서 고등선이란 학자를 만나 청나라로 가서 때를 기다려 일본을 쳐부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명성황후가 일본군에게 죽음을 당하고 이에 분노하여 일본군을 때려 눕이고 감옥을 가게 되었고 사면령이 떨어졌지만 일본공사의 방해로 나오지 못하자 탈옥하게 되었다. 김구는 일본 경찰 총독 암살하려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다시 징역을 살았고 3.1운동이 난뒤 중국으로 가 45명의 동지를 모아 상하이에 대한 민국 임시정부를 찾아 갔고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되었다. 김구는 한인 애국단이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여 이봉창에게 천왕 암살계획을 세웠으며 윤봉길에게 천왕생일 축하하는 경축식에 도시락 폭탄을 마련해 주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으로 항복하게 되어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았고 김구는 미군이 보내준 비행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 왔다. 하지만 한국은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5년동안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네 나라에게 신탁통치를 당하게 되어 이를 반대 운동응 앞장 섰으며 남북 협상 회의 가 열리는 평양에 갔다가 안두희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김구선생님에게 느낀점 : 어려운 환경에도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 멋졌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습을 지금에 정치인들이 배웠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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