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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닮기 프로젝트 - 세종대왕 영릉
작성자 김보영 등록일 12.05.12 조회수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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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닮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 영릉> 으로 아람단 체험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출발할 때에는 세종대왕하면 떠오르는 것으로 훈민정음만 외쳤지만,

직접 체험하고 느낀 후 세종대왕은 조선시대 과학과 농업의 발달에 큰 공을 세우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돌아왔지요?   그럼 퀴즈 하나!  만 원짜리 지폐에 있는 오늘 본 과학 발명품의 이름은 무엇이었지요? ^^

우리 아람단 친구들 질서도 잘 지키고 호기심도 많고 정말로 멋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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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4대 왕 세종( 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 심씨 (1395∼1446)를 합장한 무덤이다. 녕릉( ; 효종과 인선왕후 의 무덤)과 함께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이자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무덤 배치는 <국조오례의 >를 따랐다.

1446년(세종 28)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죽자 당시 광주( ,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 헌릉(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의 무덤)의 서쪽 산줄기에 쌍실을 갖춘 능이 조성되었다. 동쪽 방은 왕후의 무덤이고, 서쪽 방은 세종이 살아 있을 때 미리 마련하여 1450년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세조 때 영릉의 터가 좋지 않다 하여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나왔고, 1469년(예종 1) 현 위치로 옮겼다. 옛 영릉에 있던 상석·장명등 ·망주석 ·신도비들은 그 자리에 묻었으나 1973년 발굴하여 세종대왕기념관 에 보존하였다.

영릉에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설치되었으며, 봉분 내부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 :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 형식으로 되어 있다.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으며, 난간석에 12지신상 을 조각하는 대신 12지를 문자로 표현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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