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상산초등학교를 지어주신 이호신 선생님
지금으로부터 77년 전 1940년 우리 학교는 현재의 진천삼수초등학교 자리에서 28년을 지내오는 동안 협소한 부지와 노후한 교실로 인해 학생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어 교사 증축이 절실하였으나,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읍내리에 사시던 이호신선생님은 이러한 어려운 사정을 알고 토지 500석지기[당시 소 한 마리가 2원일 때, 5만 7,000원]를 기부하여 지금의 위치에 부지 7,000여 평을 마련하고 철근 콘크리트로 교사 2동, 교실 14개와 부속 건물로 숙직실 1개, 화장실 2개, 창고 1개를 지어 1940년 11월 25일 지금의 위치로 새로운 배움의 전당을 마련하여 주셨다. 1941년 3월 선생님의 거룩한 업적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하기 위해 이호신선생님 장학비를 현재의 위치에 세웠으며, 1942년 이호신선생님이 사망하자 생전에 쌓은 공적을 기리어 교육장(教育葬)으로 이월면 신계리에 안장하였다.
이호신 선생님 장학비의 내용
이호신(李鎬臣)장학비는 3대의 화강암 대석 위에 높이 135.3㎝, 너비 91.5㎝, 두께 45㎝의 장방형 오석(烏石) 비신으로, 비석의 제목은 ‘이선생호신장학비(李先生鎬臣獎学碑)’이며 비문은 정병조가 썼으며, 그 내용은 『시경(詩經)』 모씨전의 내용과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호신의 헌신적인 공헌과 은혜를 기록하고 있다. 이호신선생님은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무릅쓰고 알뜰히 아껴서 재산을 모았으나, 쓸 때는 아낌없이 재산을 내놓는 다는 도리를 아는 사람이었다. 재산을 모을 때는 살을 쪼개어 주옥을 감추는 것 같이 하였으며, 재산을 뜻있는 곳에 쓸 때는 진흙구덩이에 깨진 기와조각과 쓸모없는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이 하신 분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볼 훌륭한 분이시기에 우리 고장의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전당을 마련해주신 선생님의 은혜를 기록하는 비를 세워서 먼 훗날까지 사람들이 보고 본받자는 뜻으로 이 비문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