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 편지 제65호(청렴한 위인 하정 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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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제천제일고 | 등록일 | 15.01.28 | 조회수 | 131 |
<「청렴-충북교육」 청렴 편지 제65호 >
청렴한 위인 하정 류관
류관 선생은 [자 몽사(夢思)·경부(敬夫). 호 하정(夏亭). 초명 관(觀). 시호 문간(文簡)] 고려 명종 때의 문신 공권(公權)의 7대손이며, 삼사판관(三司判官) 안택(安澤)의 아들이다. 1371년(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여 전리정랑(典理正郞)·전교부령(典校副令)·성균사예(成均司藝)·사헌중승(司憲中丞)을 역임하였다. 하정 류관 선생은 성품이 소탈하고 청렴결백하여 황희(黃喜)·허조(許稠)와 함께 세종대의 대표적인 청백리로 꼽혔다. 평생 학문에 힘써 경사(經史)에 밝고 시문에 능했다. 황해도 문화에 있는 정계서원(程溪書院)에 제향 되었으며, 저서로 「하정유집」이 있다. 하정 류관 선생은 관직에 있을 당시 죄인에 가한 무리한 고문을 폐지했고, 궁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술 마시는 것을 금했으며, 허례허식을 폐하자고 주장하였다. 당대 최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출퇴근 시 수레나 말을 쓰지 않고 지팡이를 써 걸어 다녔으며, 초가집 한 칸에 베옷과 짚신으로 담박하게 살았다. 류관 선생은 벼슬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미를 들고 채소밭에서 김도 매고, 벌레도 잡았다. 이는 그가 정승으로 있을 때에도 하던 일이었다. 세종대왕은 류관 선생이 대감 벼슬자리에 있는 동안에도 그를 위하여 자주 음식과 물건을 보내어 그의 공을 치하했으나 임금이 보내는 맛있는 음식과 귀한 재물은 하루를 넘기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임금께서 어찬(임금이 내리시는 음식)을 내리시면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열었고, 아무리 귀한 임금의 하사품 일지라도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언제나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내주었다. 그런 류관 선생의 성품을 잘 아는 세종은 더욱 자주 하사품을 내렸다고 한다. 하정 류관 선생은 유훈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집안에 길이 전할 사물은 청백이니 대대로 서로 이어 끝없이 전한다." 항상 청렴결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류관 선생. 그의 청렴함은 오늘 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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