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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이야기(박성민의 효행)
작성자 장연초 등록일 08.07.27 조회수 371
박성민의 효행

옛날 도천면 덕곡리에 박성민이라는 촌부가 살고있었다. 그는 이름난 효자로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박 성민은 원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집안 일을 도우며 성실하게 살고 있었다.

박 성민의 나이 52세 때에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상복을 입고 3년 동안 시묘하지 못하는 것은 큰 불효라 생각한 그는 부모의 묘 옆에다 조그만 움막을 하나 지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보리쌀 가루와 물만 먹으면서 부모님의 상복을 입기로 했다.

그런데,부모의 묘가 태산준령에 자리하고 있어 음료수에 큰 곤란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 참 큰 일이구나! 어떻게 한담!' 하고 걱정하고 있던 중 이상하게도 묘옆에 있는 큰 바위 틈에서 맑고 시원한 물이 펑펑 솟아났다. 박 성민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더욱 정성을 들여 부모님의 묘 옆에서 생시에 다하지 못한 효를 바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었다. 박 성민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부모님의 묘를 지키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쉿' 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큰 호랑이 한마리가 불쑥 나타났다. 깜짝 놀란 그는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며 '이제는 죽는구나!'하고 어금니를 다물고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그 큰 호랑이는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움막안으로 슬슬 들어오더니 박 성민의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그는 호랑이에게 살의가 없음을 깨닫고는 식은 땀은 씻었다.

다음날 먼동이 트자마자 호랑이는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박 성민은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나!' 하며 호랑이 생각으로 한나절을 보냈다.

해가 저물자 호랑이는 다시 움막안으로 찾아들었다.든든한 호위병을 만난 듯한 박성민은,
"고맙구나! 다시 찾아주니 정말 고맙구나!"
하며,등을 쓸어주자 호랑이는 박성민의 손등을 핥으며 더욱 가까이 앉았다.

이렇게 하여 3년상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하루 밤에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박 성민은 호랑이를 기다리며 날을 밝히다가 새벽녘에 깜박 잠이 들었다.

호랑이가 크게 울부짖으며,
"여보시오. 날 좀 살려 주시오! 나는 지슴 양산군 모처에서 포수의 덫에 걸려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뜬 그는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고 하룻밤 하룻낮을 뛰고 걸어서 양산의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가 도착할 때 온 마을 사람들이 밧줄로 호랑이를 꽁꽁 묶어놓고 창으로 막 찌르려는 참이었다.

"여보시오들! 그 호랑이를 죽이시면 안됩니다. 살려주시오"

박 성민은 호랑이를 껴안고 애걸복걸 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한발자국씩 물러서며,
"여보시오, 대관절 당신은 뉘시며, 어찌된 일이오"하면서 아연해했다.

박 성민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는, "제발 나의 소원이니, 이 호랑이를 살려주십시오."
하면서 눈물을 비오듯이 쏟았다.
"허허,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그렇다면……." 모여든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하며 호랑이를 풀어주었다. 호랑이는 박 성민 앞에 꿇어 앉아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예를 표했다.

박 성민과 호랑이는 길이 먼 줄을 모르고 움막으로 돌아와 무사히 3년상을 치를 수 있었다. 박 성민이 3년상을 치르는 마지막 밤에 호랑이는 훌쩍 자취를 감추었고 3년 동안 철철 솟아오르던 샘물도 그 물줄기가 뚝 끊겨버렸다 한다.

훗난 근세조선 숙종 임금이 박 성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효자 박성민지각'이라 새긴 석비를 내렸는데, 지금도 영산에서 부곡으로 가는 국도변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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