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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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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우리고장 출신 독립운동가, 정태희(鄭泰熙)
작성자 현도초 등록일 08.07.19 조회수 352
ꋫ 성명 : 정태희(鄭泰熙)
ꋫ 생존기간 : 1898.1.8~1952.3.19
ꋫ 출생지 : 충북 중원
ꋫ 운동계열 : 임시정부
ꋫ 훈격(연도) : 건국훈장 독립장(1963)


충북 중원(中原)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후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각도대표 박인관(朴仁寬) 정덕생(鄭德生) 박승명(朴承明) 등과 1919년 10월 2일 평양에 모여 대한국민총회(大韓國民總會)를 조직하고, 임시정부 지원, 민지개발(民智開發)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다짐하였다. 그러나 일경의 감시가 심해 상해로 망명하였다.
1919년 12월에 상해(上海)의 임시정부내 임시의정원의 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21년 7월에는 임시정부 재무부의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같은 해 10월 23일에는 대태평양회의(對太平洋會議) 외교후원회 제6회 간사회에서 간사(幹事)로 피선되어 광복활동을 하였다.
1923년 5월 2일에는 임시의정원 제1과 상임위원회의 상임위원장에 피선되었으며, 1927년 1월에는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약헌(約憲) 기초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같은 해 3월 26일에는 상해 법조계 "3 1당"에서 상해한인청년회가 창립되었는데 그는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이듬해인 1928년 8월에는 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으로 피선되어 활동하였다.
1929년 1월 29일에는 정국의 불안으로 많은 정당들이 난무하자 당(黨)을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 집행위원회의 상무위원으로 임명되어 통일된 정당을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같은 해 8월 9일에는 상해 교민단의 총무로 피선되어 교민들의 안전과 재산보호 등에 힘쓰며 사회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 후 국내에 들어와 활동할 목적으로 입국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1934년 6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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