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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청렴-영동 소식지
작성자 황간중 등록일 18.12.03 조회수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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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리 이약동


태종16년에 태어난 이약동(1416~1493)은 호조참판,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등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수차례 지방관으로 부임하면서 백성들의 굶주림을 살피고, 지역민들로부터 어떤 물건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는 선정에 감사하는 뜻으로 올린 선물까지 마다한 청렴결백한 인물로 성종때 청백리로 뽑혔다.

 

주목사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공물과 세금에 관한 문서를 검토하던 중 상당한 양을

중간에서 착복한 것이 드러나자, 이속(吏屬)들을 추궁하기 시작하였다. “받아들인 공물이

다 어디로 간 것이냐? 누군가가 횡령한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양이 사라질 리가 없다.”

횡령이라니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마도 쥐가 먹은 것 같습니다.” 이속들은 쥐 핑계를 대며 자신들이 곡식을 가로챈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다. 그러자 이약동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구운 소금 거둬들인 것이 없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그것도 역시 쥐가 먹어 없어진 것이라고 이속들은 핑계를 댔다. 그러자 불같이 화를 내며 쥐가 대체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많은 소금이 없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쥐가 필요하며, 얼마나 큰 쥐가

필요한 것이냐? 이 쥐들은 필경 너희들 이렸다! ” 그러면서 이속들을 불러모아 소금 한바가지씩을 먹게 하였다. 당연히 소금을 먹지 못했고 크게 벌을 내렸다고 한다. 이 일로 백성들은 윤택해진 삶을 살게 되어 감사함을 느끼고 송덕비를 세우려고 했지만 이를 엄히 막고 선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백성들이 말채찍 하나를 만들어 받쳤고, 이마저도 물리칠 수가 없어서 사냥을 나갈 때 사용하였다가 임기가 끝나고 제주도를 떠나게 되었을 때 벽에 걸어 두고 떠났다고 한다. “백성들이 제주목사에게 바친것이니 제주목사가 써야지 내가 가지고 떠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약동이 떠나고 난 후 그 말채찍은 목사가 정사를 다스리는 곳에 걸어 두고 후임 목사들이 그의 선정을 본받을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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