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석고등학교 덕풍교육 10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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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형석고 | 등록일 | 24.07.16 | 조회수 |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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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석고등학교 덕풍교육 10가지
마음숨터 - 덕풍교육 1 방이 생기자 '마음숨터' 이름을 걸고 마음을 들어준다고 하면서 아이와 선생님 7명을 만났다. 내면엔 까닭 없는 슬픔이 있다. 슬픔의 끄나풀을 지나치고 싶어 스스로 외로운 자신을 미워한다. 그 미움이 사랑인 걸 알아야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거야. 미움의 뿌리는 꿈이라는 기다림. 그러니 너무 눈치 볼 일은 아냐. 조금씩 나아진다고 여기며 나에게 눈길 준 사람에게 기대 봐.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손길이 오고 남의 마음도 보듬는 날이 생기지. 마음이 어때요. 편해졌어요. 거 봐, 행복해지는 걸 알잖아. 내 안의 나와 말을 걸면 좋아져요.
나에게 하는 절 - 덕풍교육 2
절은 나를 돌아가야 남을 높입니다. 나의 낮은 강물을 터야 남의 바다를 만납니다. 내 허리를 숙이는 게 나에게 오는 나를 알음이라서 나의 닦음에 길을 내는 일이 남의 받음에 기울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선생은 선생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손 모음 절하면 서로에게 몸과 맘을 도는 힘이 생겨 한 줄기로 흐르는 겸손이 자랍니다. 나에게 하는 절, 나보다 너를 높여서 나를 좀 더 높이 기리는 아름다운 살림의 덕입니다. 절
덕분 인사 - 덕풍교육 3 수단이 목적이 된 교육의 진단은 겸손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야 한다. 겸손은 나를 낮춰서 하늘을 보고 날 사랑하여 남으로 가는 힘이다. 인사는 절로 보여주는 몸가짐이라서 자신에게 먼저 숙이는 경건성이다. 받고 안 받고는 중요한 일 아니고 내면의 나를 바로 찾아가야 한다. 손 모음을 마음 모음이라 여기며 나에게 향하게 하고 허리 숙이면 우주의 기운이 모여 따뜻해진다. 그 마음 그대로 남에게 가는 게 덕분 인사라서 서로 하면 된다. 하루에 만나는 이에게 '덕분입니다', 절을 나누면 인성교육은 따로 안 해도 된다. 얼이 깃든 몸으로 가르치는 걸, 선생의 덕으로 여기면 좋은 교육이다. 아직도 비교와 다툼의 가르침이 교육이라고 여긴다면 잘못 생각한 인재(人才)가 나라를 망하게 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인재(人災)가 된다. 덕분인사는 선생이 해야 학생이 감사의 마음으로 배움을 시작하니 덕분 인사를 가르침의 중심에 둬야 조화로운 지성의 꽃이 핀다. 저는 하루 삼백 번 이상 해 보자고 다짐하고 몸으로 가는 실천을 소중하게 여기며 다가서고 싶다. * 사진은 중학교 학생이 하는 장난기도 있는 그림입니다. 즐거워하며 자신을 알아주는 선생에게 절하는 모습이 고맙습니다.
행복한 진로, 진학 - 덕풍교육 4 교육은 한시적 학교만 보는 게 아니라 멀고 길 인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는 진로에 대한 선택을 보여주는 곳이어야 평생의 거름이 된다고 여깁니다. 강요된 배움은 괴롭고 아프고 두렵고 힘들고 무서워 도망가고 싶었고 경쟁과 비교와 상대적 칭찬으로 구속과 억압과 우울의 시간이 많았고 학교의 잘못된 명예를 강요받으며 평생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비교가 아니라 동행, 이기심이 아니라 공감, 틀림이 아니라 다름, 경쟁이 아니라 상생의 배움터를 위한 살림을 꿈꿉니다. 백 명의 좋은 대학 진학자보다 한 명의 행복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공부에서 신명 나는 노래와 흐드러진 춤을 추는 선택을 존중하는 바람을 기다립니다. 오로지 상대적 사회인을 만들지 않고 힘든 어제를 용서하고, 두근거리는 내일을 당겨와 행복한 오늘을 사는 좋은 살림을 떠올립니다. 학생, 선생, 학부모, 학교, 지역사회의 마음이 잘 어우러져서 배움의 뜻이 일어 좋은 삶을 위하여 봄날의 꽃을 피우는 길이 보였으면 합니다. 학교의 마음이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덕분입니다.
파각(破覺) - 덕풍교육 5 차렷, 경례! 식민의 국민으로 천황에게 인사하라는 구호. 그대로 이어져 독재의 장군에게 복종하라는 군대의 말. 그리하여 굴종하지 않으면 죽인다는 무서운 독(毒)이 든 교육의 잔이었고 학생을 무릎 꿇린 서슬 퍼런 칼의 문화다. 바로, 절. 손과 마음을 모으고 나에게 먼저 절하는 다짐. 그리하여 나를 돌아가는 사랑으로 어우러지는 인사. 그리고 '덕분입니다'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존중과 공감과 겸손의 숙임을 한다. 칼의 문화로 좌측보행의 그른 길로 다닌 걸 교통과 보행의 문화로 바꾼 지 여러 해. 밝음과 옳음과 순리와 생명의 길을 잃고도 철학과 사상으로 바로잡지 못했다. '바른길 가세요' 산 자의 길을 열어 나답게 나의 길을 열어야 한다. 질서는 순리에 따르는 얼의 길로 가르쳐야 한다. 남의 길을 강요 받고 행복의 억지를 배우는 날을 개벽해야 한다. 깨뜨릴 파(破) 깨달을 각(覺). 잘못된 관행과 정신을 깨고 올바른 민족의 사상과 정도(正道)를 깨달아야 한다. 깨야 깬다, 파각! 말을 만들어 새날문화운동으로 2004년부터 20년을 지내온 교육문화 정신을 돌아본다. 선생이 먼저 몸으로 학생의 맘을 돌리는 운동이 절문화운동이고 길문화운동이다. 그냥 '하라'만 남은 뜻이 없는 교육의 무덤을 파서 동티 난 이 땅의 흙에 새살을 입히는 새날을 생각한다. * 20년 동안 다섯 가지 덕목의 새날문화운동을 펼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자리를 지우다 - 덕풍교육 6 교장실을 마음숨터라 이름하고 모임터와 나눔터로 내놓고 그렇게 부르며 고르게 지낸다. 자리에 끄달려 억누르려 하고 배움이를 가르치려고 높아지면 가온누리를 벗어나 치우친다. 교장 선생님이라 부름도 지운다. 학생도 선생도 섬동 선생이 되어서 만나는 대로 손 모아 절한다. 덕분의 샘이 그들에게서 솟아 입 막고 물 마실 수 없음이니 겸손의 자람과 흐름이 행복이다. 죽음이 나를 살린다는 걸 안다. 말씀으로 영혼을 살리는 것과 밥으로 온 죽음이 몸을 살리는 것을. 말과 몸가짐은 몸을 떠나면 죽는다. 그 말을 눈 귀로 받아 쟁이면 내가 되어 옳고 그름의 길을 만들며 산다. 밥도 뿌리를 떠나면 죽는다. 여러 손길로 온 정성을 모시면 내가 되어 피, 살, 뼈, 털이 되어 내 몸이 된다. 밥은 말씀이나 몸가짐이라서 잘 받아먹으면 내 삶이 아름답고 밥은 숨 떠난 몸이지만 잘 모시고 내 몸 잘 섬기면 튼튼하다. 그러니 내 몸과 맘이 되는 덕(悳)을 아는 게 밥을 먹는 이치다. 그래서 밥 한 그릇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깃들어 살림의 샘이 된다. 학교나 사회나 밥을 가르쳐야 한다. 죽음으로 부활하는 나를 깨달아 나를 다시 남에게 생명이 되도록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를 알려 주어야 한다. 내 영혼의 밥이나 내가 이룬 밥을 다른 이가 받지 않고 버리면 좋겠는가? 그렇지만 주고도 바라지 않으면 그 또한 그윽한 덕(현덕 玄悳)이다. 그러니 모든 밥 먹을 때 겸손의 밥그릇으로 받아 잘 삼켜야 한다. 밥이 되어라. 이것이 선생이 몸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빈 그릇 하면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비워라. 내가 받은 게 덕분의 희생이나 거룩함이니, 잘 받아서 잘 누리고 다시 나누는 게 흐름이다. 밥이 되어라. 죽음은 죽지 않고 도는 생명이니 작은 일도 살림의 씨앗이니 나를 살피고 남을 기억하라. 선행은 내가 남을 담아 잘 살고 그걸 그대로 넘겨주는 거다. 그러면 내가 밥이 되어 세상을 먹여주는 하느님이 된다. 밥 먹는 일(食事)이 모든 일(萬事)이니 밥을 알면, 하늘의 이치와 땅의 생성과 사람의 도리가 선다. 빈 그릇을 실천하며 큰 누리에 사는 배움이에게 알음앓이를 가르치는 게 교육의 도(道)이다. 또다시 밥이 되어라.
삼통오성(三通五省) - 덕풍교육 8 삼통오성(三通五省) 삼 주체와 소통하고 다섯 번 성찰하자 (感謝 감사) 함께하는 고마움에 감사하면서 (兼愛 겸애) 나를 사랑하듯이 가족을 높이고 (正道 정도) 교육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면서 (寬容 관용) 책임을 묻지 않고 칭찬을 드리며 (德分 덕분) 덕분에 사는 뜻을 절로 표현하자. * 학생 하루 열 번의 경청과 응대로 마음을 들었는가? 손을 모으고 오백 번의 덕분 절을 실천했는가? 규칙을 어긴 학생에게 깨우침을 주었는가? 억울함을 당한 학생 마음을 위로하였는가? 학습과 인성의 가르침에 최선을 다했는가? * 학부모 상담하며 학부모 처지에서 잘 응대했는가? 학교 일을 함께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는가? 가정의 어려움을 물어 도와주려고 했는가? 학부모 의견을 친절하게 듣고 반영했는가? 알림 글에 정성 어린 마음을 담아 보냈는가? * 교직원 하루에 쉰 번 웃는 얼굴로 맞이했는가? 치우침 없이 모든 교직원을 잘 모셨는가? 의견을 낼 때 귀 기울여 듣고 실천했는가? 믿음으로 먼저 힘든 일을 알아주었는가? 좋은 제안에 민주적 합의로 적용했는가? * 교육 가족을 모시는 뜻을 세우고 나의 입장을 양보하고 이해하며 나에게 기대하는 점을 경청하며 웃는 얼굴과 고운 말로 응대하자. 학교 교육의 삼 주체가 모여 조화롭고 진취적인 협력으로 다 함께 즐겁고 기쁠 수 있도록 귀 열고 입 닫으며 마음 통하는 좋은 학교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감사 일기 '덕풍' - 덕풍교육 9 덕분의 마음을 갖고 감사의 말을 전하면 겸손의 몸가짐을 갖는다. 세 가지 덕을 품고 지내면 남 탓에 울지 않고 내 입에서 욕이 사라지고 실천의 삶에서 스스로 높아진다. 절대로 어렵지 않지만, 내 마음으로 남을 가두고 남에게 얽매여 눈치 보고 조금씩 마음이 거칠어진다. 날마다 고마운 일을 찾고 그 일을 글로 쓰다 보면 배움과 나눔의 바람이 불어 상생의 누리가 개벽한다. 공부는 아는 걸 옮기는 일. 나를 위해 지식을 쌓고 남을 위해 지식을 나눈다면 나의 사랑이 남과 더불어 피는 꽃이다. 날마다 감사 일기를 쓴다면 날마다 깨어나는 날 보게 되고 날마다 행복한 까닭을 알게 되면서 손 모음의 평화가 평생을 이룬다.
덕풍(悳風) - 덕풍교육 10 덕은 밖에서 얻은 걸 안에서 익힌 곧은 마음이라고 이천 년 전 사람 허신이 풀이했다. 덕은 길(道)을 걷는 뜻을 삶으로 옮겨서 쌓는 좋은 길틈이다. 얼이 길이라면 덕은 걸어가는 실천궁행이다. 풍은 바람이고 교화이고 순화이고 운화이다. 문화의 바람으로 퍼지는 스며드는 바람의 흐름이다. 다석 선생은 덕을 속알이라 하고 속에 담긴 알이라서 깨서 나눔하라고 하셨다. 혼자 사는 일보다 더불어 사는 뜻을 일러주고 가셨다. 그래서 덕은 쌓는 것이고 복은 받는 것이 되어 사이좋은 나눔과 섞임으로 살림하는 알짬이 된다. 덕풍은 덕의 바람이라서 향기를 머금고 순리에 따르는 도리의 흐름이고 꽃이다. 그걸 교육으로 풀이하면 배움이에게 바른길을 나답게 걸으라는 뜻이다. 학교에서 덕풍은 앎과 몸가짐의 고름이 있는 가르침이다. 교육의 뜻인 배움과 기름은 지식의 실천이고 앎의 나눔이다. 덕풍은 인성교육보다 전인교육에 가깝고 배움과 익힘의 일치를 가리킨다. 공부를 못하고 인성이 나쁜 건 하(下)이고 공부를 잘하고 인성이 나쁜 건 중(中)이고 공부를 잘하고 인성이 좋은 건 상(上)이다. 문제는 중에 있으니 차라리 배우지 않고 그대로 사는 게 좋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크게 배우고 널리 베푸는 뜻을 세우는 바탕을 가르친다. 덕풍교육은 배움과 나눔의 일치되는 삶으로 덕을 베풀고 덕분을 아는 사람을 기다린다. 덕분의 마음을 가지고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겸손의 몸씀을 이루는 거다. 많이 배우나 곧은 나눔이 없는 병든 삶을 삶은 바뀌어야 한다. 깨야 깸을 얻듯이 지행합일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야 교육이다. 덕풍교육은 덕으로 가르쳐 기름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높이는 공간 시간 인간의 사이를 이어주는 손길이다. 학교에 덕풍이 불면 사회가 봄이다. 자신을 배우는 앎과 남과 함께 나누는 행(行)이 동시에 이루어지면 사람이 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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