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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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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잊으라는 건 안 잊고
작성자 이차희 등록일 13.12.09 조회수 193

잊으라는 건 안 잊고

   시골 어느 부잣집 도령이 서울 구경을 왔다. 어린 도령의 짐보따리에는 돈도 두둑이 들어 있었다. 도령은 서울에 와서 어느 여관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이 여관집 주인 부부는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그 어린 도령의 보따리가 은근히 탐이 났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던 중 호박씨가 머리를 아둔하게 만들고 기억력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박씨를 한 말이나 사들였다. 그 아이가 맡겨둔 보따리를 잊어버리고 시골로 돌아가면 그 돈으로 자기네 팔자를 고쳐 보려는 생각에서였다.

   주인집 부부는 틈나는 대로 호박씨를 까서 한 줌씩 도령의 입에 넣어 주었다. 도령은 고소한 호박씨를 맛나게 먹었다.

   ‘아휴, 잘 먹는다. 저렇게 먹는걸 보니 보따리 맡긴 걸 잊어버리겠구나.’

   부부는 눈길을 마주치며 웃음을 나눴다.

   도령은 구경을 다하고 떠날 날이 되었다. 아침을 잘 먹고 호박씨 한 줌을 받아 입에 넣고 씹으며 도령은

  “내 보따리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인은 기가 막혔지만 임자가 달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그 묵직한 돈 보따리를 꺼내서 도령의 어깨에 메어 주었다.

   도령이 공손히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선지 한 시간도 훨씬 지났을 때 주인 아줌마는 무릎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머니. 그 도령이 잊으라는 보따리는 잊지 않고 밥값을 잊고 그냥 갔으 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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