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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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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언니 미안해
작성자 이차희 등록일 12.09.24 조회수 218

언니 미안해

 

  희현이네 가족은 오랜만에 네 식구가 나란히 가족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싸느라 분주하셨고, 아빠도 바쁜 엄마를 돕기 위해 청소를 하고 빨래도 너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희현이와 동생 지현이는 하나도 기뻐하는 기색이 보이질 않습니다. 출발할 때까지 거실 소파에 앉아서 물끄러미 텔레비전만 쳐다볼 뿐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얘, 희현아, 이제 그만 텔레비전 좀 꺼라.”

  “예, 엄마.”

  “지현아, 너는 거실 창문 좀 닫으렴.”

  “예, 엄마.”

  두 자매는 웬일인지 서로 눈빛도 마주치지 않고 엄마의 말에 조용히 자신의 일만 하고 가방을 챙겨 현관 밖으로 나갔습니다. 드디어 아빠의 오래 된 트럭이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복잡한 도시의 거리를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거리엔 이미 은행잎들이 바람에 나뒹굴고 빨간 단풍잎들도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 저리 몸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여보, 저기 단풍잎들 좀 봐요. 정말 곱네요.” “그러게, 어느 새 이렇게 은행잎이랑 단풍잎들이 곱게 물들었지? 정말 예쁘네.”

  “얘들아, 너희들도 저 단풍들 좀 보렴.”

  하지만 두 자매는 들은 척도 하질 않고 차창 밖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두 자매의 행동이 거슬렸지만 억지로 말을 시키진 않았습니다.

  두 자매의 냉랭한 분위기의 원인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동생 지현이가 언니가 평소 가장 아끼던 목도리를 몰래 하고 나갔다가 김치 국물을 잔뜩 묻혀온 일로 희현이가 화를 내면서 한바탕 크게 말다툼을 했습니다.

  사실 몰래 목도리를 하고 나온 지현이는 언니보다 먼저 집에 돌아와서 살짝 제 자리에 놓아 둘 생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결국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니. 저 할 말이 있는데…….”

  “무슨 말인데?”

  아무 것도 모르는 희현이는 자꾸만 말꼬리를 흐리는 지현이가 몹시 답답했습니다.

  “무슨 말인데 빨리 말해 봐.”

  자꾸만 머뭇거리던 지현이는 등 뒤에서 살며시 빨갛게 김치 국물이 배인 목도리를 꺼냈습니다.

  “이 목도리를 내가 얼마나 아끼는 줄 알면서! 왜, 남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가져가는 거야?”

  방안에서 연신 큰 소리가 오가더니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희현이와 지현이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질 않습니다.

  오늘 가족 여행도 순전히 이 두 자매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부모님께서 준비한 것인데 별로 효과는 없는 듯 합니다.

  차는 어느 새 단풍이 곱게 물든 절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절을 구경하고 편평한 곳에 자리를 펴고 둘러 앉아 점심도 먹고 단풍잎도 모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새 해질 무렵이 되었습니다.

  희현이네는 서둘러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브레이크를 밟으셨습니다.

  “끼이익!”

  자동차은 시끄러운 굉음을 낸 후에야 멈추어 섰습니다. 깜빡 깜빡 졸고 있던 희현이와 지현이는 깜짝 놀라 깨어났습니다.

  “여보, 아빠, 무슨 일 이에요?”

  영문을 모른 엄마와 두 딸은 아빠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그냥 어딘가를 가리켰습니다.

  그 곳에는 검은 구름처럼 수많은 새들이 한데 모여 있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새 한 마리가 다쳐서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고 다른 새들이 열심히 그 새 주위를 맴돌면서 날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얘들아, 저길 보아라. 저렇게 작은 새들조차도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는데 하물며 세상에서 둘 밖에 없는 너희들이 사소한 일로 싸워서야 되겠니?”

  아빠는 조용하고 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희현이와 지현이는 순간 자신들이 그동안 한 행동들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언니, 미안해. 허락 없이 언니 물건 만져서.”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해. 빨면 되는 것을……. 화내서 미안 해.”

  서로 손을 마주 잡고 화해하는 두 자매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엔 말없는 엷은 미소가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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