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최초 원근법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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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진기 | 등록일 | 09.10.26 | 조회수 | 306 |
스물일곱에 요절한 화가
르네상스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신학과 철학, 정치학과 경제학이 아니라 미술이 시대의 발걸음을 선도하는 이상한 일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선진 학문을 가장 예민하게 수용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한 발 앞서 이끌었다. 천재들의 빛나는 성운이 토스카나의 하늘을 뒤덮고, 예술의 보배로운 향기가 피렌체의 황금시대를 선언했다. 마사초. 스물 일곱 나이에 요절한 화가다. 그러나 짧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벽화 한 점을 남긴다. 최초로 그려진 원근법 그림이었다. 피렌체의 도미니크 수도회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측랑 안벽에 그린 성 삼위일체 프레스코가 공개되자 피렌체 시민들은 크게 놀랐다고 한다.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그림에서 볼 만한 건 인물들 말고도 장미 문양 사각 격자로 짜인 반원통형 천장이다. 올바른 원근법을 구사해서 차츰 줄어드는 데, 마치 벽을 털고 훌쩍 물러나 보인다.”(바사리)
벽에 큰 구멍 뚫린듯
프레스코 높이는 30엘레. 노아가 만든 방주나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높이가 같다. 십자가에 달린 알몸의 예수가 그림 복판에 자리 잡았다. 성부는 붉은 반암 석관 위에 발을 딛고 십자가 뒤에 섰다. 성부와 성자 가운데로 성령의 흰 비둘기가 날아든다. 하나가 셋이 되는 성 삼위일체의 전형적인 도상이다. 마리아와 어린 요한이 수난의 현장을 지킨다. 이들은 보는 이를 그림 안 사건으로 안내하고 사망의 문에서 구원을 매개한다. 여기까지가 벽을 파낸 안쪽 공간이다. 세로 홈이 패인 황금빛 사각 벽주가 교회 벽면을 경계 짓는다. 그 바깥으로 돌출한 계단 위에 봉헌자 둘이 무릎을 꿇었다. 그림 맨 아래 석관 뚜껑에는 해골이 누웠다. 붓으로 그렸지만 벽면 바깥으로 성큼 나와 보인다. 등장 인물 여섯을 모두 연결하면 뒤로 기운 삼각형 구성이 된다. 인물구성은 개선문처럼 생긴 벽면 안쪽 예배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림 바깥 현실공간까지 걸쳤다. 피렌체 시민들은 말로만 듣던 원근법의 기적을 목격하고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화의 평면 위에다 수학의 눈금자와 기하학의 먹줄을 퉁겨서 지어낸 공간이었다. 마사초는 젖은 회벽에 물감을 스며서 회화의 건축을 지었다. 종교 주제를 내세워 미술의 과학을 실험했다. 환영과 현실의 문턱이 사라졌다. 이런 그림에선 보는 이도 화가가 쳐둔 원근법의 그물에 포박되지 않을 수 없다. 원근법 세상에서는 보는 이가 그림 속에 뛰어들어 그날의 사건을 증언하고, 성서의 인물들이 현실의 문턱을 넘어 유유히 걸어나온다. 가상과 현실, 붓과 자연이 구애 없이 어울린다.
아래 뼈는 첫인간 아담
석관 위에 드러누운 해골은 누굴까? 십자가 처형의 현장은 골고타. `해골산’, 또는 `해골’이라는 뜻이다. 성지 골고타는 아담의 해골이 묻힌 곳이라는 전설을 낳았다. 적어도 7세기초 그곳에 세워진 골고타 예배소 지하층의 해골 주인공은 아담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졌다. 마사초가 그린 해골을 보면 대퇴골간이 짧고 골반이 쪼그라들었다. 아래턱뼈가 얇은 데다 이빨이 하나도 안 남고 다 빠졌으니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다. 미술사학자들은 또 해골이 갈빗대가 하나 모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첫 인간 아담이다. 예수는 아담을 바라본다. 그러나 인류 첫 조상과 예수의 죽음은 무슨 상관일까? 사도 안드레아는 십자가의 신비를 이렇게 풀이한다. “첫 인간은 나무로 말미암아 죄를 지었고 이 세상에 사망을 가져왔으나, 둘째 인간은 신성의 나무에 달려서 사망을 몰아내셨다…첫째 아담은 금단의 사과에 손을 뻗었으나, 둘째 아담은 십자가 나무에 죄 없이 달리셨다.” 한 걸음 나아가 야코부스는 13세기 <황금전설>에서 아담과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 예형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아담은 나무로 말미암아 죄를 지었고, 예수는 나무에서 고통을 받으셨다. 그리스 기록을 보면 선악과 나무와 예수의 십자가는 같은 나무였다고 한다.” 마사초의 해골이 입을 열어 말한다. “그대들의 오늘은 나의 어제, 나의 오늘은 그대들의 내일.”
눈에 자까지 대고...원근법 그리기
원근법의 개념은 ‘투시하다’는 말에서 나왔다. 마사초의 친구 알베르티는 1436년 <회화론>에서 회화를 투명한 유리창에다 비유한다. 그림이란 단순히 평면에다 색과 형태를 발라놓은 게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열린 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로써 시각주체인 화가가 재현 행위의 주인 자리를 되찾았다. 보이는 세상을 그리지 않고, 내가 보는 세상을 그린다는 의미다. 중앙투시 원근법의 기초는 시각 피라미드 이론이다. 이때 피라미드의 꼭지점은 화가의 눈, 바닥면은 재현대상, 피라미드의 허리를 썰어낸 횡단면은 그림이 된다. 독일 화가 뒤러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원근법을 배웠다. 백년 전 알베르티의 저작을 읽고 당장 쓸 수 있는 원근법 도구를 넉 점이나 만들었다. 뒤러 판화에서 화가는 모눈 그물처럼 새긴 유리창을 바라본다. 제일 간단한 도구다. 유리창은 시각 피라미드의 횡단면에 해당한다. 눈의 위치를 고정시키려고 눈금을 새긴 새끼 오벨리스크를 코앞에 바짝 세워두었다. 탁자 위에는 유리창틀하고 모눈을 똑같이 새긴 소묘 종이를 펴놓았다. 종이는 크기가 달라도 괜찮다. 화가는 앞에 누운 모델을 연신 눈으로 확인하면서 유리창 모눈을 기준 삼아 공간 좌표를 하나씩 확인한다. 확인된 좌표는 소묘 종이에 옮겨 표시한다. 이렇게 완성된 소묘는 나중에 본격적인 큰 그림을 그릴 때 요긴하게 쓰인다. 미술사가 노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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