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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0주년 계기교육
작성자 함종진 등록일 10.06.24 조회수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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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주년 계기교육(어느 신문에 독자가 투고한 글 )

 

올해는 6.25 전쟁발발 60주년이 되는 해다. 6.25전쟁은 사망자와 전비(戰費)를 보면 세계역사상 10위권의 큰 전쟁이었다. 그런데 최근 초등학생들에게 6.25전쟁이 언제 왜 일어났는지 설문결과 57%가 모르고, 38%가 조선시대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몇 년 전 고등학생들도 6.25전쟁은 남쪽에서 북침한 것으로 알고 있는 학생이 20% 이상이었다. 이유는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을 잘못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60주년을 맞아 젊은이에게 전쟁을 바로 알리고 경각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탈냉전 후 구소련 외교문서의 대규모 공개에 힘입어 6.25 전쟁의 진실이 밝혀졌다. 6.25 전쟁은 소련의 스탈린의 사주를 받고, 중국 모택동의 후원아래 북한 김일성이 행동대원으로 불법 남침을 감행 수행한 전쟁이었다. 6.25 전쟁 남침공격명령도 소련국적 북한군 작전국장 유 성철이 작성하였다.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54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2일간 전쟁놀이가 아닌 민족끼리 총칼을 겨눈 최대비극이었다. 국군 127만 명이 참전하여 13만 7천명이 전사하고, 유엔군 21개국 190만 명이 참전하여 5만 여명이 전사하였으며, 전 국토는 황폐되고 수많은 유가족, 상이군경, 이산가족과 아직도 살아남은 200여명의 국군포로들의 고통과 상처는 말 할 수 없다.

  그런데 아직도 북한과 종북(從北)세력들은 6.25 전쟁을 민족해방전쟁 내전으로 보고 있는데 언어도단이다. 대한민국은 전쟁발발 2년 전에 이미 건국되었고, 북한의 불법기습 침략을 저지하기위해 국가운명을 걸고 싸운 총력전이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전쟁으로, 국지전이 아닌 양대 진영 41개국이 참여한 국제전이었다.

  그리고 6.25 전쟁은 종전이 아닌 승자도 패자도 없이 아직도 끝나지 않는 휴전상태이다. 언제 또다시 재발할지 모른다.

  필자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때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당시 공직자, 지주들은 높은 산이나 동굴에서 숨어 지냈고 밤만 되면 북한군이나 공비들의 세상이 되어 무조건 끌려가 피살되었다. 얼마 전 5가족 제삿날이 같은 날이란 보도를 보았는데 5가족이 한꺼번에 끌려가 살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올해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6.25 바로 알리기에 대대적으로 홍보계획이 되어 다행이다. 6.25 주요 전적지가 문화재로 등재되어 관광명소가 되고, 각급 단체별로 관련 행사가 열릴 계획이다. 주요 언론도 6.25 전쟁 중요 이슈별로 재조명하고, 특히 우방국 참전용사 글을 싣고 있다. 또한 “전우, 빨간 마후라 2탄” 등 6.25 전쟁 TV 다큐멘터리와 “포화 속으로, Harry OP를 사수하라” 등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안보는 국가 생존을 보장하는 산소와 같다. 산소가 결핍되면 개인의 생명을 잃듯이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무너지면 나라를 잃는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힘이 약한 민족과 나라는 패망하여 사라지는 진리를 알고 있다. 최근 6.2 지방선거와 천암함 사건으로 우리사회에 불신풍조와 남남갈등이 심각하다.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온 국민은 안보의식 해이와 호국의지 결여로 겪은 병자호란, 임진왜란, 한일 합병 등의 슬픈 역사를 되새겨 보며, 다시는 이 땅에 6.25 전쟁 같은 참화가 없도록 대비해야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란 유대인의 경구를 되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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