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계기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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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대성여중 | 등록일 | 09.04.06 | 조회수 | 366 | |||||||||||
【계기교육 자료】
충청북도청주교육청
2006년 10월 13일 유엔은 총회를 열어 대한민국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차기 사무총장 임명을 최종 확정하였고, 이로써 반 장관은 내년 1월1일부터 유엔의 제8대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것은 개인의 영광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사다. 우리의 국력을 세계에 떨칠 수 있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자축할 만하다.
이름 : 반기문 출생 : 1944년 06월 13일 출생지 : 충북 음성 학력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소속 : 외교통상부 장관 수상 : 페루 태양 대십자 훈장(2006) 경력 : 제7대 외교통상부 장관(2004), 청와대 외교 보좌관(2003), 유엔대표부 이사(2001), 주미대사관 정무공사(1993), 제3회 외무고시 합격(1970)
지난 1945년 유엔(UN)이 출범한 이후 유엔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인물은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을 포함해 모두 7명이다. 역대 사무총장을 보면 노르웨이 출신의 트리그브 할브단 리(Trygve Halvdan Lie,1946.2~1953.4)가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그는 1950년 10월 재선에 도전했지만 소련이 UN의 한국전 개입에 대한 그의 지지를 문제 삼아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임기를 3년 연장할 수 있었다. 2대 총장도 유럽인 스웨덴의 다그 함마슐트(Dag Hammarskjold, 1953.4∼1961.9)가 이어 받았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분쟁지역들을 돌며 적극적인 중재를 시도, 유엔 사무총장의 권위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1961년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가다 비행기가 추락해 숨졌다. 그는 사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3대 총장은 첫 아시아 출신으로 미얀마의 우탄트가 선임됐으며 10년간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 우탄트는 사무총장직을 "지구상에서 가장 변화무쌍하고 도전적인 정치직업"이라고 자평한 적이 있다. 이어 오스트리아의 쿠르트 발트하임(Kurt Waldheim, 1972.1∼1981.12)과 페루의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아르(Javier Perez de Cuellar, 1982.1∼1991.12)가 각각 4대와 5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이집트 출신인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이 6대 총장으로 연임에 나섰지만 재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첫 사무총장이 됐다.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의 가나 출신으로 "가나가 미국의 입김을 크게 받고있다"는 인식 때문에 프랑스가 강력히 반대했으나 막판에 찬성함으로써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유엔 사무총장직은 '외적 화려함과 내적 고통'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다.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지명도에선 미국 대통령에 버금가고, 도덕적 권위면에서 교황의 권위에 종종 비유되면서도 늘 '치어 리더' '고해 신부'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의 실질적 수장으로서 전 세계 192개 회원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공평무사하게 풀어내야 하는 고난도 외교력이 요구되는 유엔 외교의 사령탑이다. 이를테면 본인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기 보다는 정글 같은 국제사회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각종 국제분쟁을 중재하는 '심판' 또는 '중재자' 역할을 맡는 자리인 셈이다. 평화유지활동, 군비축소활동, 국제협력 증진 등 사무총장의 역할은 유엔의 존재이유와 맞닿아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구촌 재상(宰相)'으로 칭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외교 관례상 세계 각국에서 받는 의전은 당사국 행정부 수반의 수준에 맞춰지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현실과 북핵 위기, 짧은 유엔가입 역사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의 유엔 사무총장 배출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 만큼이나 놀라운 성과로써, 한국 국가브랜드 이미지가 국제사회에서 올라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국제 외교·정치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세계 11위의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이나 영향력은 그 위상에 크게 못미쳐 온 게 사실이다. 짧은 기간 압축성장의 탓이기도 하지만, 한국 외교가 미국 중심으로 이뤄져온 사정과도 무관치 않다. 때문에 유엔 사무총장 배출의 의미는 각별하다. 국제외교무대에서 중·일과 함께 아시아권 지도국의 위치를 확인한 점도 성과이며, 부수적으로는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무대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인의 국제기구 등 진출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효과가 폭넓고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가시적으론 북핵문제 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국제적 여론의 지원을 받아 북핵의 평화적 해결과 북한의 변화를 주도해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은 국제정치 무대의 주요 이슈여서 반 장관 개인에겐 중요한 치적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일찌감치 외교관을 꿈꿔왔다고 말하고 있다. 충주고 재학 시절, 갈고 닦은 영어실력으로 미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 입상, 부상으로 그 시절 미국 구경의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때가 1962년이었다. 반 장관은 대회를 주최한 미국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존 F.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을 접견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장래 희망이 외교관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을 때 ’최고의 외교관’이 될 꿈을 다졌고, 결국 외교관들이 가장 선망하는 유엔 사무총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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