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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에 만난 스승의 인연
작성자 김순희 등록일 11.05.16 조회수 437

 단발머리의 순진 무궁한 어린 시절  주소지 학군 조정이 한창이던 때  5학년 11월초

쯤 주성초로 전학을 와서 선생님을 만났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청주시 남문로에 두

채, 서문동에 한 채가 있어서 여기 저기서 살았다. 아마 주소지는 서문동으로 되어있

었나 보다. 전학 오자마자 주판으로 곱셈, 나눗셈으로 계산하여 60점 이상만 점심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었다. 누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아서 번번이 점심을 못 먹

었었다. 지금 생각 해 보니 그 당시 선생님의 열정과 욕심이 대단하였던 거 같았다.

30년 동안 스승의 날만 되면 수동의 산자락에 보라색 등나무꽃으로 덮힌 대문을 열

고 선생님을 뵈었다. 80년 중반에 서울서 살았을 적에도 마지막 속리산 고속버스로

내려와 선생님을 뵙고 그 이튼날 첫차로 서울로 올라갔던 그 때가 행복했던 거 같았

다. 평소에 남편도 그런 점은 본받을 만 하다고 칭찬까지 했었다. 오늘이 있기까지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의 그림자와 눈빛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생각 해

본다.

 한 해 한 해 다르게 연로해 가신 선생님을 뵙고 많이 안타까웠었는데 스승의 날인

어제는 뼈만 앙상한 선생님을 뵈오니 왠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선생님의 손을 잡

고 눈물이 어찌나 나는지 운전하고 오는 동안 계속 울었다.

호흡이 곤란하여 고통스럽다고 하셔서 산소통이라도 달아드리라고 했더니 당신 본

인이 거부를 하신단다. 연신 “난 살 만큼 많이도 살았다”라고 하시며 반은 생을 포기

하신 모습이였다.  83세의 연세라면 한창 청춘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그

동안 잊지않고 매년 찾아 와 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말씀에 또 눈물이 펑펑 나왔다.

왜? 사람들은 자연에 따라 가야만 하는 걸까? 언젠가 나도 가야 할 길이지만 너무 일

찍 마음을 정리하신 선생님이 야속했다. 앙상한 뼈만 남은 등을 부축하여 방으로 들

어가시는 그 뒷모습에 내가 더 잘해드리지 못함을 뒤 돌아보며 마지막 악수 해 주신

선생님의 야윈 손을 두 손 모아 인사 드리고 나왔다.

연신 사모님도 본인이 마음의 문을 닫은 거 같다며 걱정을 하고 계셨다.

단발머리 철부지로 만나 흰머리 중년이 되어  생각 해 보니 50년 전에 만난 인연으로

이어져 온 선생님과의 사제지간 사랑이 이제는 무심천에 흘러가 점점 멀어 지고 잊

혀 질 것이다. 영원한 나의 스승!  이 완구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의 열정을 본받아 머리로 가르치지 않고 마음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습니

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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