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운여위원 연수자료(청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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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태진 | 등록일 | 15.09.07 | 조회수 | 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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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충북교육」 청렴 편지 제71호 > 대접받기를 거부했던 조선의 백이(伯夷) 조선 중기의 문신 임광의 본관은 풍천(豊天)으로 자는 자정(子瀞). 사헌부감찰 익신(翊臣)의 아들이다. 광해군 1년(1609)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가 재사(才士)로서 이름을 떨쳤으나, 정치가 어지러움을 보고 낙향하여 공직에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순릉참봉이 되었다가 이듬해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풍저창직장(豊儲倉直長, 궁궐에서 소요되는 쌀, 콩, 종이류 등을 담당하는 관청인 풍저창의 종7품 관원)을 거쳐 승정원주서․성균관전적․호조낭관․병조낭관․정언․지평을 지냈으며, 임광은 한결같이 법을 지키면서 절의를 꺾는 일이 없었는데, 다음 일화는 이러한 임광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임광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임광 일행이 일본에 도착하자, 일본인들은 갖가지 좋은 음식을 내놓으며 그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그러나 임광은 아침저녁으로 일본인들이 대접하는 음식은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이 준비한 보잘 것 없는 건량(乾糧, 가지고 다니기 쉽게 만든 음식)과 변변치 않은 반찬만을 먹을 뿐이었다. 일본인들은 혹시 임광이 자신들의 대접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아 그러는 줄 알고 그에게 물었다. “공은 어째서 이곳에 와서 이렇게 변변찮은 음식을 드십니까? 저희가 이곳에 나는 좋은 것들로 만든 음식을 보내오니 사양치 말고 취하시길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공무를 모두 마치고 나니, 일본인들이 바친 쌀과 갖가지 음식들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임광은 남은 쌀과 음식을 문안 오는 일본 사람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었다. 이 소문이 일본을 다스리는 관리에게 전해졌다. 당시의 여러 신하들이 이를 두고 칭송하면서 - 출처 『신계영문집(申啓榮文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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