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니머스는 범죄 피해자들의 복수를 대신 해준다. 피해자는 대부분 가해자보다 훨씬 약한 위치에 있거나, 가해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에 처해 있다. 예를 들어, ISIS가 민간인을 납치했는데 그 가족은 그를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나니머스는 해킹으로 그를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어나니머스의 방법은 해킹, 또는 크래킹이라 불리는 범죄 행위이다. 범죄를 범죄로 막는 것을 과연 정의롭다고 볼 수 있는가. 그 누가 어나니머스에게 범죄행위를 통해 다른 범죄를 막아달라고 요청하긴 했는가. 시키지도 않은 범죄 행위로 그들은 정의롭다고 평가되곤 한다. 그들은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

  어나니머스가 정의롭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그들의 행위가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은 테러조직과 같은 반사회적 범죄조직을 크래킹이라는 범죄 행위를 통해 막는다. 즉 범죄를 범죄로 막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경찰도 아니고, 누군가의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닌데 제 멋대로 범죄 행위를 저지르며 정의롭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일로 평가되는 일들을 많이 하더라도, 익명성 뒤에 숨고, 그들의 행위에 책임지지 않는 한, 어나니머스의 행위가 범죄행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둘째는 바로 2차, 3차 피해자 발생의 문제이다. 어나니머스는 리더가 없고, 특정한 행위자가 없으며, 회원 명단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로인해 어나니머스를 사칭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어나니머스의 범죄 행위를 보고 그들을 우상으로 삼기도 한다. 그들 중 몇몇은 자신을 어나니머스라 칭하며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해킹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에 그러한 악용 가능성을 실제로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한 회사에 불만을 품고 그 회사에 디도스 공격을 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는데,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나니머스라고 하며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어나니머스는 이렇게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며,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어나니머스가 정의롭다고 볼 수 없는 이유 중 셋째는 바로 익명성을 이용한 범죄이다. 그들은 익명성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듯 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책임의 문제이다. 익명성을 이용한 범죄에서, 늘 피해자는 존재하지만 가해자는 없다. 그렇다면 누가 피해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까? 보상은 어떻게 해야 하지? 물론, ISIS와 같은 테러조직에 대한 어나니머스의 복수 행위를 보고 정의로운 영웅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그러한 행위 과정에서 그들로 인한 2차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어나니머스의 잘못된 해킹으로 누군가의 사생활이 전부 노출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피해자가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어나니머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들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어나니머스는 자신들의 잘못된 범죄 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하여 아무 책임을지지 않는다. 즉, 익명의 조직인 어나니머스의 범죄에 대한 책임 소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어나니머스는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 누군가 어나니머스를 막지 않는 한, 그들의 범죄 행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들도 범죄자이고 지금까지 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감당해야 할 것이다. 즉, 그들은 범죄 행위를 통해 정의롭다는 평가를 받지만 결코 정의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