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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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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중국 체험학습 보고서 - 장종호
작성자 외국어교육부 등록일 12.09.11 조회수 67
2012 중국 체험학습 보고서 - 장종호

( 2012. 7. 24 )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국에 가게 되었다.
  우리는 먼저 가이드 선생님과 미팅 후, 천불산으로 이동하였다. 천불산이란 이름이 붙인 이유는 천개의 불상이 있다하여 천불산이라 한다 하였다. 천불산에 있는 만불동과 흥국사를 관광하였다. 특히 만불동은 문화재들을 잘 볼 수 있었다. 동굴이어서 그런지 시원하여서 짜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불동 안에는 불상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의 불상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다 관람한 후에는 요성으로 이동하였다. 요성의 호텔에서 석식을 해결하고 잤다.

( 2012. 7. 25 )
  다음날이 되자, 오전에는 요성시 외국어 학교에 방문하였다. 중국인 선생님이 뭐라 말씀하셨지만 나는 알아듣지는 못하였다. 중국의 학교는 '대제중', '동중' 등과 같이 특별한 이름은 없고, 번호를 매긴다고 하였다. 1,2,3…이렇게 해서 번호를 매기는데, 숫자가 작을수록 좋은 학교라 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지금 이 학교의 숫자가 1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이 학교는 초, 중, 고등학교가 같이 있다 하였다. 그러면서 중국은 뭐든지 크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후에는 동창호와 산섬회관을 관람하였다. 동창호는 인공호수로, 마을을 보호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인공호수라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었다. 하지만 안의 마을은 공사를 하고 있어서 잘 보지는 못하였지만 나중에 이 공사가 완공되면 다시 한 번 마을을 구경하고 싶었다. 동창호 다음으로 관람한 것은 산섬회관이었다. 이 회관은  현존하는 중국의 회관 중에서 2번째로 큰 회관이라고 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회관이 상인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대문만 봐도 옛 중국 건축기술의 발전 정도와 고풍스러움이 묻어났다. 안에는 사자상이 2개 있었다. 처음 볼 때에는 우리나라의 해치같기도 하고, 사자 같기도 하고, 전설의 기린 같기도 하였다. 그런데 가이드 선생님께서 이 동물의 상은 좋은 점만을 모아둔 사자의 상이라고 하셨다. 알고 나서 다시 보니, 왠지 멋이 느껴지는 사자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자상들의 양 옆에는 비석이 있었다. 그 비석들은 옛 상인들의 협회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관람을 마치고 석식을 먹고, 호텔에서 투숙 및 휴식하였다.

( 2012. 7. 26 )
  3번째 날은 기대가 되는 날이었다. 중국의 5대 명산 중 동쪽에 있는 산인 '태산'을 등반하기 때문이었다. 태산은 예로부터 신성시 되었던 산이다. 황제들도 정상에 올라가 제사를 지내고, 공자도 정상까지 올라가시지는 못하였지만 올라가셨던 산이라고 한다. 태산에 대하여 알게 될 수록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산이었다.
  다행히도 케이블카로 태산의 대부분을 등정하였다. 위에서 아래로 보는 태산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우리는 정상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다 보니 계단이 아주 많은 곳이 있었다. 마치, 만화영화인 쿵푸팬더에서 주인공인 팬더가 걸어다녔던 그 계단 같았다. 산의 정상에 다다르니, 어떤 비석같은 것이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였지만 사람이 많아 찍지는 못하였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아주 커다란 비석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 비석에는 글씨가 없었다. 가이드 선생님께서 설명하여 주시기를 이 비석은 '무자비'로, 무자비 비각 전체에 글씨가 없어서 유명해졌다고 하셨다. 또한 높이는 5.2m로 높았다. 이 무자비는 한나라의 한무제 때 세운 것이라고 한다. 태산을 다 등정하고 나니,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이 뒤따라 뿌듯하였던 날이었다.

( 2012. 7. 27 )
  여행을 마치고, 보고서를 쓰는 지금, 생각하여보아도 이 4번째 날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먼저, 곡부로 이동하였다. 곡부에 도착한 후, 관람할 장소는 삼공이라 불리우는 '공묘', '공부', '공림' 이었다.
  첫 번째로 관람하였던 공묘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다. 공묘에는 처음에 여러 개의 문이 있었고, 글자가 각각 적혀 있었다. 그 글자 하나하나마다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다 공자를 위대한 인물로 받들었던 그 당시 사람들의 뜻이 감추어져 있었다. 공묘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성전은 노란색의 기와로 되어 있었다. 노란색 기와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거의 황제나 다름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공자가 노란색 기와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황제도 공자를 인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공자가 심었다는 나무도 있었다. 원래 3그루를 심었지만 2그루가 없어지고, 나머지 1그루도 없어졌지만 청나라 때 그 나무의 싹을 받아 다시 심은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공자의 후손들이 거주하였던 '공부'를 관람하였다. 공부에는 공자님이 마셨던 우물이 있었다. 건륭 황제도 이곳에 머물며 이 우물의 물을 마셨다고 한다. 또한 가이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공자의 제9대 후손이 진시황에게 "진시황은 친구도 아니고 도움을 줄 사람도 아니다." 라 말하여 공자의 후손 대부분을 땅에 묻었다는 것이었다.
  관람하다 보니 내가 책에서 흔히 보았던 공자의 초상화가 그려진 그림이 걸려있었다. 이 그림에는 많은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황제가 뛰어난 화가들을 불러 놓고, 공자의 초상화를 그려오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화가들은 공자의 초상화를 그린 후, 황제에게 갔다. 황제가 화가에게 "이 그림이 진짜 공자님의 초상화가 맞느냐?" 라 하시니 화가는 황제가 무서워 "잘 모르겠습니다."라 대답하였다. 그러자 황제는 화가의 목을 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화가들이 죽었다. 하지만 '오도자' 라는 화가는 달랐다. 황제 역시 오도자에게도 "이 그림이 진짜 공자님의 초상화가 맞느냐?" 라 하셨다. 오도자는 "어제 밤, 꿈에서 공자님을 보았는데 그 공자님대로 그렸으니, 아마 맞을 겁니다." 라 답하였다 한다. 그러니 황제가 "그러면 공자님이 맞구나."하여 오도자에게 상을 주고 그 그림을 걸었다고 한다. 참 재치 있는 이야기였다. 관람하면 관람할수록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 같았다. 또한 공자의 후손 중 여자들이 거주하던 것에는 성질 고약하였던 서태후가 직접 쓴 글씨가 있었다.
  삼공 중 마지막인 공림은 공자와 그의 가족의 묘지이다. 특이한 것은 공자의 묘이다. 멀리서 보면 공자의 묘에 새겨진 마지막 글씨는 멀리서 보면 '건'자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왕'자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삼공을 다 관람하고, 제남으로 이동하였다. 제남으로 이동 후, 천성광장의 일부분을 보고 중국에서 가장 크다는 샘인 '표돌천'에 갔다. 표돌천 주위에는 바다에서 산 바다표범을 바닷물의 염분을 낮게 해주어 적응하면서 이제는 민물에서 살게 된 바다표범이 아닌 '민물표범'이 있었다. 표돌천에 다다르자마자 시원함이 느껴졌다. 세 갈래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물 또한 달다 하니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표돌천을 다 관람한 후, 샘물이 넘쳐 호수가 된 '대명호'를 관람하였다. 간단히 사진만 찍었지만 알게 된 점은 다른 호수에는 개구리가 많이 서식하는데, 이 호수는 샘물이어서 개구리가 살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대명호를 마지막으로 기나긴 관람을 마쳤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워가는 것도 많았던 하루였던 것 같다.

( 2012. 7. 28 )
  이 날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바로 한국으로 가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설렘과 기쁨을 멀리한 후, 산동성 박물관을 갔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관람하였던 박물관 중 제일 컸던 박물관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점심때 까지 다 보지는 못할 예상이 들기도 하였다. 먼저 1층부터 관람하였다. 특별 전시회에서는 도자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의 도자기들이 있었고, 신기하였던 도자기들도 있었다. 다음으로 관람한 곳은 어떤 스페인의 예술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던 곳이었다. 그 분의 작품 중 특이하였던 점은 눈이 3개가 있는 사람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마치 현대의 피카소 같기도 하였다. 2층 관람을 마친 후, 가장 기억에 남았던 2개의 유물은 397개의 인형들과 부채같은 것 이었다. 특히 부채같은 유물은 높은 관리나 왕들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였던 것이라고 한다. 용도는 햇빛이나 먼지 등을 막는 데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산동성 박물관에서의 관람을 그렇게 마치고, 드디어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그 공항에서 다시 인천 공항으로 이동하니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제천으로 이동하여 제천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중국체험학습은 이것으로 끝이 났지만 내 마음속에는 영원히 남을만한 체험학습이었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 중국의 문화를 체험하여 보아 더 뜻 깊었던 체험학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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