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중국 체험학습 보고서 - 이창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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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외국어교육부 | 등록일 | 11.09.16 | 조회수 | 81 |
2011 중국 체험학습 보고서 - 이창민 7월 20일(1번째 날) 우리는 7월 20일 8시까지 학교로 모였다. 그리고 9시 5분에 덕평휴게소를 들려 간단한 간식을 먹고 10:30 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은 세계적인 공항답게 깨끗하고 시설도 정말 좋았다. 11시에 공항내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1시 20분에 출국을 했다. 비행기가 뜨는 느낌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기압차가 있어 귀가 조금 아팠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귀에서 피가 날까봐 조금 걱정도 되었다. 비행기를 1시간 40분 정도 밖에 타지 않았다. 저번에는 11시간 정도 타 보아서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중국이란 나라를 간다는 게 설레고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긴장되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는 중국이란 나라는 지금은 우리나라 보다 뒤떨어지지만 언젠간은 미국을 따라 잡을 나라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중국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본 느낌은 지저분하고 우리나라 사진으로 본 60년대 시절 같아 발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외국 아이들도 나처럼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다. 중국 시간으로 2:10분에 도착했다. 중국은 우리나라 보다 1시간 더 느리다고 한다. 중국은 넓은 땅인데도 불구하고 1개의 시간만 쓴다고 한다(베이징 시간으로 기준을 함). 그래서 중국 시민들의 불평이 많다고 한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중국 지난 야오창 공항을 나왔을 때 한국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햇빛도 얼마 없는데 정말 후덥지근한 날씨에 정말 쾌쾌한 냄새, 뿌연 연기가 다가왔다. 중국은 처음부터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가이드랑 만나서 버스를 들어갔는데 이상한 냄새가 엄청 났다. 그러나 우리는 이 버스를 타고 7박 8일 동안 이동해야 한다. 2시 5분에 우리는 숙소로 출발했다. 선생님은 숙소에서는 조심히 다니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중국의 물건들은 우리나라 같이 튼튼하지 않고 쉽게 부러지기 때문이다. 숙소를 보니 우리나라 숙소가 참 좋다는 것을 느꼈다. 숙소에서 송시영이랑 방 배정을 받은 후 저녁을 먹으로 호텔 2층으로 내려갔다. 중국에서 처음 먹는 밥이어서 기대되었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니 한국 음식이 제일 맛있었다. 밥에서는 특이한 반찬들이 많이 나왔다. 탕수육도 나왔다. 물도 따뜻한 물로 나왔다. 왜냐하면 중국 음식들은 다 기름에 한번 씩 튀겨서 나오는데 그것을 먹는데 차가운 물을 먹으면 속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차가운 물을 먹으려면 밥 먹으러 가기 전에 미리 말해놓아야 한다고 한다. 밥을 거의 먹지 않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중국 음식이 먹을 만해서 많이 먹었다. 7월 21일(2번째 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대제중학교랑 자매 결혼을 맺은 요성 제일 중학교로 갔다. 우리는 그 곳에서 중국 문화에 대하여 배웠다. 그곳의 학교는 많이 낡아있었다. 그리고 책상도 작아 앉기가 불편했다. 중국인 선생님이 오셔서 수업을 해주셨는데 우리가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해 중국어 선생님이신 장학재 선생님이 통역을 해주셨다. 중국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문장을 말해주셨지만 해석을 하면서 그 말수가 적어졌다. 그래서 웃겼다. 그 선생님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가장 유명한 가수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주걸륜’ 이라고 하셨다. 그 가수는 대만 가수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이름을 들어본 가수이다. ‘수업을 50분간 하고 10분 쉬는 시간’ 이러한 방식으로 3교시 동안 수업을 진행하였다. 중국의 화장실을 가보았더니 대변 보는 곳은 푸세식이였고 문이 없고 양 옆에 한 개씩 있었다. 우리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는 어떤 분이 대변을 보고 계셨는데 우리가 한꺼번에 들어가서 민망해 하실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볼일을 보고 계셨다. 그 화장실의 냄새는 엄청 났다. 하지만 그 화장실만 냄새 나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 공중 화장실 대부분이 냄새가 심하게 났다. 심지어 식당 화장실 냄새도 정말 고약했다. 학교가 끝나고 우리는 한국 식당을 갔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음식을 먹었다. 반찬들은 한국음식이어서 우리는 반찬을 많이 먹었다. 그곳에는 한국 과자들도 팔아서 애들이 많이 샀는데 몇몇 애들 것은 유통기한이 지나 슬퍼했다. 밥을 먹은 후 우리는 아교 박물관을 갔다. 아교는 당나귀 가죽으로 만든 약 같은 간식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먹고 젊어지고 오랫동안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진다고 해서 나는 아교를 2박스 샀다. 처음 아교를 만들 때는 10명도 안 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교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아교 공장이 커진 것이라고 하였다. 중국은 정말 더웠다. 그래서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윗옷을 벗고 다녔다. 그것이 한국과는 정말 달랐다. 한국 같으면 창피해서 못했을 일인데 중국 남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벗고 다녔다. 숙소에 와서 어제랑 똑같은 저녁을 먹고 앞에 있는 마트를 갔다. 그곳에서 중국 사람들이 자꾸 말을 걸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너무 당황했었다. 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 음료수를 사서 숙소로 가서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다. 7월 22일(3번째 날) 아침 7시에 기상해서 똑같은 밥을 먹고 학교로 출발했다. 수업 내용은 이랬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의 명칭이다. 면적은 960만 km2정도이다. 행정구역에는 4개의 직할시가 있고 5개의 자치구가 있다. 인구는 약 13억 정도 있다. 국기는 오성홍기라고 불리며 붉은색이 뜻하는 것은 혁명, 노란색은 황인종을 뜻하는 동시에 광명을 뜻한다. 큰 별은 공산당을 뜻하고 작은 네 개의 별은 노동자, 농민, 도시 소자본계급, 민족자산계급을 뜻한다. 국가는 의용군행진곡이고, 기후는 대부분 온대기후 이다. 지형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서고동저 지형이다. 수업시간에는 정말 지루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이다. 학교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도서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중국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도서관도 한국 도서관보다 컸다. 점심을 한국 식당에서 먹고 산업단지 공장으로 갔다. 그곳은 정말 컸다. 그래서 따로 공장버스도 많았다. 우리가 그곳을 가기 위해 20분 정도 달렸는데 공장이 옆에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다 산업단지에 속하는 작은 공장들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냄새에 적응하나 보다. 며칠 지나니 버스냄새가 아무렇지도 않았다. 산업단지 관광버스 냄새도 정말 심했는데 조금 지나니 괜찮아졌다. 사람은 정말 신기한 것 같다. 7월 23일(4번째 날) 학교에서 공자에 대하여 배웠다. 공자는 태어날 때 아버지가 60세이고 누나가 9명 있었다고 한다. 공자의 키가 2m 3cm 정도의 거인이라고 추측한다. 공자는 중국의 위대한 정치가이자 철학자, 교육자이다. 73세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공자는 노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 명인 중 한 사람이 공자라고 한다. 공자는 예와 의를 중시했다. 공자가 살아 있을 때에는 찬양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공자의 교육사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르치는 것에는 차별이 없다. 돈을 받지 않고 가르쳤다. 가르치는 사람은 피곤하다고 말하면 안 된다. 사람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등이 있다. 공자가 죽었을 때 그 제자들이 모두 아들처럼 상복을 입고 많이 슬퍼했다. 공자는 많은 이들에게 덕을 많이 쌓은 것이 느껴진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 말이 새삼 느껴졌다. 나도 공자처럼은 못되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린 저녁에 시장을 갔다. 그곳에는 목이 안 잘린 닭이 있었다. 그 닭은 목이 꺾여 있었다. 정말 징그러웠다. 시장에는 벌레들도 있었다. 그것은 매미 유충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이 움직였다. 정말 끔찍했다. 이것을 먹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7월 24일(5번째 날) 마지막 날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타이안으로 떠났다. 역시 중국은 땅이 정말 넓다. 타이안 호텔은 저번 호텔보다 좋지 않았다. 내가 빨래를 하고 힘들게 짜서 널 때 나는 어머니를 도와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어머니의 고마움도 느꼈고 집안일이 힘든 것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어머니가 빨래 좀 널어 달라고 하면 싫다고 했지만 그때 내가 정말 나빴다는 것을 중국여행을 하며 느꼈다. 7월 25일(6번째 날) 우리는 태산을 올랐다. 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가서 그곳에서 남천문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30분 정도 걸어 다녔다. 태산은 정말 아름답고 맑은 곳인 것 같다. 설명서에 한글도 써 있어서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웠다. 그곳에는 정말 큰 문화재들이 많았다. 그곳에는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그 높은 곳에다가 어떻게 썼을지 궁금하다. 정상에 올라 갔을 때 엄청난 크기의 향을 볼 수 있었다. 그 향은 정말 컸다. 나는 그런 향을 처음 봤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향을 들고 등산하는 사람도 있었다. 엄청난 믿음인 것 같다. 내려 올 때도 똑같이 내려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취푸로 출발했다. 7월 26일(7번째 날) 우리는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 밤을 보내야 했다. 정말 아쉬웠다. 하지만 한국도 그리웠다. 우린 더 놀고 싶지만 저번 중국 온 형들이 놀다가 다쳤다는 말을 듣고 장난을 칠 수 없었다. 중국에서의 생활환경과 우리나라의 생활환경은 많이 달랐다. 대부분 상의를 벗고 다니는 남자들, 매미 유충들, 목 꺾인 닭들, 주먹만 한 개구리들, 냄새나는 화장실, 경치 좋은 태산 등 많은 풍경들이 내 눈과 코에 강렬하게 들어왔다. 또한 중국의 음식문화는 우리나라랑 정말 달랐다. 한국의 칼칼하면서 담백한 맛의 음식에 비해 중국은 거의 모든 음식에 기름을 사용해서 느끼했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다양한 차가 발달되었다. 또한 놀란 것은 말로만 듣던 크고 광대하단 표현에 걸맞게 정말 중국 땅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일본과 호주와 캐나다를 다녀봤고 그곳들은 우리나라 보다 선진국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고, 중국이란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처럼 보이는데도 인구의 수와 자원이 그렇게 막강한 힘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 요번 여행을 통해 더 궁금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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