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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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재준 | 등록일 | 08.06.05 | 조회수 | 59 |
Minnehaha Academy를 다녀와서 -소중했던 또 하나의 가족- (미국의 가정과 문화) 5월 3일, 아침 일찍 일어나 2주일의 기나 긴 여행의 문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가족, 새로운 집에서 2주라는 길고도, 짧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크나큰 부담과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바라볼지... 하는 걱정을 가득 안고 14시간이라는 기나긴 일정을 이겨내고, 미네소타 주의 공항에 내 발을 내딛었다. 우리 일행은 Minnehaha Academy의 Wendell Carlson씨와 Dean Erikson씨를 만나 긴장감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Minnehaha Academy의 South Campus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교를 잠시 둘러보고, 도서관에서 Host Family를 기다리며,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 듣고 있을 때, 한 가족, 한 가족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근에 그 때 만큼 긴장되고 떨리던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의 성은 Yaeger.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먼저 서로 메일을 주고 받아 서로에 대해 조금씩을 알고 있는 상황이라, 내 Host-family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은 아니었다. 나의 Host Father은 Greg, Host Mother은 Nancy Ann, 누나는 Aliison, 그리고 내 또래 남자 아이의 이름은 Paul이었다. 우리 일행 모두 자신의 Host Family를 찾고 각자의 자가용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미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헤어지던 그 순간, 이제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어려움에 대한 걱정,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였고, 한국어로는 아무와도 의사소통할 수가 없었으며, 오로지 영어로만, 그리고 내 스스로의 힘을 빌려서 2주라는 긴 시간을 이겨내야 했다. 그들과 악수하고, 자동차에 타고 Minnehaha Academy를 떠났을 때, 걱정과 불안감을 어느샌가 사라지고, Host Family에 대한 친근감과 편안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데도 큰 불편함도 없었으며, 처음 만난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며 나에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시차로 인해 첫 날은 일찍 잠들어 16시간 정도의 긴 잠을 자게 되어 교회도 같이 가지 못하였다. 너무 죄송하다 말씀드리니, 오히려 좋은 것이라며, 전혀 그런 마음 가질 필요 없다고 죄송한 표정이 역력한 나를 감싸주셨다. 미국의 가정은 한국의 가정과는 역시 달랐다. 우선 아파트가 거의 없다는 점. 한국은 땅이 좁아 인구밀도가 매우 높고 자연히 아파트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Host Mother께서 설명해 주신 바에 따르면, 미국은 오래 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주인이 없는 땅이 매우 많으므로, 그 땅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모여 살지 않고 개인 혼자서 살았다고 한다. 그 문화가 발달되고 발달되어 아파트를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풍경을 만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집들은 지하실이 있고 2 또는 3층의 집을 가지고 있다. 내가 생활했던 집에도 지하실에는 비디오 게임, DVD, 간단한 보드게임 등이 자리 잡고 있었고, 1층에는 부엌, 거실 등이 있었으며, 2층에 방들이 있었다. 그리고 차고를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1개씩 가지고 있어 차를 주차하거나, Garage Sale을 열기도 하고, 자전거나 테니스, 배드민턴 라켓 등의 스포츠 용구들도 보관하기도 한다. 스포츠를 즐겨하고 좋아하는 미국인들 가정에는 대부분이 농구 골대를 가지고 있었고, 자전거, 테니스, 골프, 야구, 배드민턴, 우리 가정에는 Allison이 La Crosse라는 네트가 달린 막대와 고무로 만들어진 공을 사용하여 경기하는 스포츠 팀에 속해 있어, La Crosse 네트 등도 보관되어 있었다. 아파트에 살지 않는 미국인들은 대부분이 강아지 또는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을 한 마리 씩 키우는데, 그들에 대한 사랑이 굉장히 큰 것 같았다. 우리 집에도 Rookie라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는데, 10살의 큰 강아지였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나, 잠시 나갔다 왔을 때, 나에게도 어리광을 피우며, 졸졸 따라다녔던 Rookie도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 속에 남아있다. 미국의 가정은 한국의 가정보다 서로 더 친숙한 것 처럼 느껴졌다. 물론, 한국에서도 부모와 자식들 간의 관계가 친밀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가정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예전부터 효의 문화가 발달했고, 어른에게 존댓말을 쓰며 엄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와서인지 미국의 가정처럼 만큼 친숙하지는 못한 것 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부모와 자식이 마치 친구인 것 처럼 지내고,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매우 큰 것 같았다. 미국의 식생활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하자면, 그들은 아침, 점심은 한국에 비해 간단하게 해결하는 편이다. 아침은 시리얼을 대부분 먹고, 메이플 시럽과 와플을 먹거나 팬케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저녁은 햄버거나 피자로 대신할 때도 있었으나, 아침과 점심에 비해서는 푸짐하게 먹었다. 그들은 기름진 음식도 물론 많이 먹지만, 브로콜리 등의 많은 야채를 섭취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적응이 안 되었던 부분이자, 한국인의 위상을 떨어뜨렸을 수도 있었겠구나... 라고 생각된다는 부분이 바로 감사하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미국인들에 대한 나의 태도였다. Sorry, Thank you, Excuse me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들은 가족들 사이에도 길을 막고 있으면, Excuse me, 무엇을 부탁할 때는 항상 please를 붙이고, 사소한 실수에도 Sorry라고 말하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남에게 도움을 받았더라면 Thank you라고 말한다. 한국인의 경우 길가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도 상관 않고, 타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약간 어색한 면이 있는 등, 미국인들의 생활에 비해서는 약간 매너가 없다 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있었다. 2주 동안 Host-Family와 정말 좋은 경험도 많이 하고, 재미있는 시간도 함께 보냈다. Mall of America도 가고, 수영장에도 가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도 하였으며, 골프 연습을 하러 가기도 하고, 식사 후에 근처의 테니스 장에 가서 테니스 연습을 하기도 했다. 또한 온 가족이 모여 내가 가르쳐준 원카드를 하거나 나에게 새로운 카드 게임을 가르쳐 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지하실에서 Paul과 비디오 게임을 하며 지루함을 달래기도 했다. 그리고 온 가족이 소파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기도 하였다. 나는 거의 매일 Host Family와 매일을 주고받고 있다. 나는 며칠전 나갔던 퀴즈 대회 얘기도 하고, 우리 가족 얘기도 하면, 그 가족은 다른 대회에서 행운을 빈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가니까 너무 슬프고 보고싶다라고 답장을 보내준다. 아직도 미국에서 찍었던 Host Family의 사진을 한 장 한 장씩 들여다 볼 때 마다 나는 내 가족에게 느끼는 사랑을 그들에게도 느끼게 된다. 그들도 나를 진정 자신의 아들처럼 사랑해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며, 나도 2주 동안 만큼은 그들의 나의 또 하나의 가족처럼 대하며 내 정성과 사랑을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내 성공적인 2주도 결국 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란 말이 있다. 언제나 옆에서 나를 친절하게 도와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었던 그들은 나의 기억 속 한 페이지에서 언제나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파이팅을 외쳐 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남아있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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