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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을 다녀와서.... 제천중 박태성
작성자 박태성 등록일 05.03.10 조회수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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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을 다녀와서....

제천중 박태성


2003년 7월 21일 새벽4시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출국 준비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짐정리를 끝내고 나와 엄마, 아빠는 인천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 대제중학교로 갔다. 그곳에서 인원점검을 끝내고 큰 관광버스 한 대로 각자의 부모님과 함께 인천으로 향하였다.
아침 7시경 인천에 도착하여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Northwest)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한항공비행기에 자리가 비고 목적지도 같고 시간도 빨라 오자마자 대한항공을 타고 출국을 하였다.
엄마는 나에게 국제전화카드를 사 주셨다. 나는 ‘30000원 카드를 언제 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우리는 자신이 소지한 큰짐을 붙였다. 그 후 출국심사를 받으러 출국 심사하는 곳으로 갔다. 그 때 엄마와 아빠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엄마 아빠께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긴 후 출국을 하였다.
대한항공 게이트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향하였다.
한국에서 일본 나리타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이다. 일본에서 미국 미네소타로 가는 시간에 비하면 약과이지만..
한국에서 일본 나리타공항까지 오는데는 별로 지겹지도 않고 따분하지도 않았다. 이유는 한국인들도 많고 스튜어디스 누나들이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사나 음료 같은 것을 달라고 할 때 한국말로 해서 그다지 따분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아침을 기내식사를 한 뒤 몇 분 있다가 일본에 착륙하였다.
우리는 일본에 착륙하여 갈아타고 갈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일본에서 잠깐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에 왔으면 우동이나 초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성탁이와 $7이나 하는 우동을 먹었다. 일본우동은 특별한 맛(?) 이 났다.
미네아 폴리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은 E..! 창가 쪽에 앉고 싶었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고 중간 좌석에 앉게 되었다.
비행기에는 영어와 일본어가 있을 뿐 한국어나 중국어.. 등 은 볼 수 가 없었다. 일본에서 떠나는 비행기라 일본어의 설명과 글이 써져 있을 수도 있다. 또 일본이 선진국이라서 그런 것이 있을지 모른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차이를 알 수가 있었다.
내 자리 옆에는 멋진 일본인 남자가 한 분 앉았고 내 옆에는 나의 생각에는 미국 여자인줄 알았는데 아시아사람인 것 같았다.
영어를 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인으로 착각한 이유는 보석에 미국스타일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육감(?) 때문에...
기내에서 저녁을 먹고, 저녁에 먹는 간식을 먹고 아침을 먹고 앉아서 먹기만 하는 것 같았다. Northwest는 스튜어디스가 누나들이 아닌 아줌마와 아저씨들이었다. Northwest는 미국 비행기여서 미국인들이 많았고 스튜어디스도 미국인이었다. 한국 스튜어디스누나들이랑 미국 스튜어디스 아줌마, 아저씨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물을 달라고 하면 한국에서 배우기를 “워터”라고 하지만 미국인들은 “워럴”이라고 한다. 분명히 물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water) 인데, “워터”를 못 알아듣는다. 최대한 발음을 굴려서 나는 “워러”까지 했는데 못 알아듣고 옆에 있던 일본인 남자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일본인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나는 일본인이 나쁘게만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고정관념인가 보다. 그 일본인에게도 나는 조그마한 도움을 주었다.
그 일본인이 자고 있는데 추운지 이불을 꼭 덮고 자고 있어서 그 위에 있는 에어컨을 꺼주었다. 각 한사람당의 에어컨이어서 괜찮았다. 그런데 나는 그 에어컨에서 감기가 걸렸다. 내가 더 한심했다.
거의 20분마다 (?) 우리가 가고있는 곳의 지도를 보여주는데 태평양은 작은 것 같아도 정말 큰 것 같았다. 몇 백 마일로 가는데 2시간에 손톱만큼도 못 가기 때문이다. 마일은 미국의 거리 단위인데 우리나라의 ‘리’와 같은 것이다
마일은 1마일에 약 1.6km 이다. 그런데 나는 미국인이 왜 마일을 쓰는지 모르겠다. 거의 세계의 나라가 km 와 h, ha 이런 것들을 쓰는데 미국은 마일을 쓰고 섭씨 대신에 화씨를 쓴다. 이런 것이 미국의 자존심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빨리 가는데 ..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앞에 앉은 꼬마와 그의 엄마가 있었는데 그의 엄마는 한국인이고 꼬마는 미국인이었다. 금색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혼혈아이다. 그 아이는 너무 귀여웠다. 정말 눈에 집어넣어도 안 아픈 아이 일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혼혈아이다.
나는 조금 그 아이가 불쌍하였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혼혈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날짜변경선을 지나 미국 LA를 지나 미네소타 안에 있는 미네아폴리스 공항에 내리게 되었다. 너무 힘이 들고 온 몸에서 "우두둑"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내려서 아까 그 일본인에게 Thank you. 라는 말을 남긴 뒤 헤어졌다.
우리는 입국신고를 받고 미국 땅을 밟았다. 그런데 우리가 가게될 학교 미네하하 아카데미에서 우리를 맞이하러 사람이 나왔다.
그 사람은 Mr. C 이다 '미스터 칼쓴'이라고 부른다. 그는 우리를 가르쳐주고 안내를 해줄 선생님 이셨다. 그리고 '캐티(Kathy)'라는 여자선생님이 나오셨는데 그분은 한국인이다. 그러나 미국시민이다. 그 분은 우리나라 이민자 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시고 한글학교 선생님이신 아주 훌륭한 분이시다. 그 선생님도 우리를 가르쳐 줄 선생님이시다.
칼슨과 캐티선생님 만이 아니라 미네하하 아카데미에는 많은 선생님과 많은 학생 이 다닌다. 하지만 캐티 선생님은 미네하하 아카데미 선생님은 아니시다. 우리는 간단하게 간식을 먹으러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와 포테이토와 콜라를 마셨다. 친구들은 미국 햄버거가 한국보다 더욱 느끼하고 맛이 없다고 하였는데 나는 맛도 괜찮았고 내 입맛에 맞았다. 그 후 우리는 미네하하 아카데미 학교로 가서 환영파티를 한 후 홈스테이 배정을 받았다.

 

나는 우리학교의 '서건호'와 홈스테이를 같이 하게 되었다. 홈스테이 배정은 정말이지 환상이었다. 호스트 파더는 Eric이고 호스트 마더는 Deb이라는 분이 신데, 두 분다 상냥하시고 친절하시고 자상하시고 참 좋으셨다.
미네소타주(State)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입양을 많이 한다. 한국인이 많이 입양 된 듯하다. 한국인 입양인 목회도 있을 정도였다.
미국은 너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걸 이걸로 첫 번째로 느꼈다. 우리 홈스테이는 아이가 2명인데 7세와 4세인 아이였고, 이름은 큰 아이는 Noah 이고 작은 아이는 Adam 이였다. 처음에는 그 아이들이 낯설고 불쌍하고 이랬지만 사는 것도 우리보다 잘살고 먹는 것도 우리보다 잘먹고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앞서서 후에는 그 아이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이렇게 미국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미국생활을 한 달간 하게 되었다.
다녀온 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홈스테이 아저씨와 아주머니이시다. 이유는 나에게 잘해주시고 너무 착하시고 친절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홈스테이 배정을 받고 각자의 집으로 간 후에 다음날부터 9시까지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는 이유는 공부를 하러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2교시의 공부를 하고 방과후에는 투어를 하거나 올림픽 등 운동 경기를 하기도 하였다. 학교에는 Abby, Mr. C, Kathy, Terri 등 많은 선생님들이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많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미국은 학교 수업 중간 중간에 간식을 먹는다. 한국도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홈스테이 가족 중 살인 노아는 6~8시 사이에 태권도를 다닌다. 그 태권도 관장 님은 한국인이시다. '이용국' 태권도 챔피언이라고 하신다.
나는 그 곳에서 Nicole(니콜) 이라는 소녀를 알게 되었다. 니콜은 나보다 한 살이 많다. 한국나이로 15세 이다.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고 한다. 이면에서 우리보다 교육이 앞서 있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다. 우리는 너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 같다. 우리가 미국에 유학이나 이민을 가면 2단계 높은 학년에서 수업을 하면 맞는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과 많은 지식을 가르친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정말 평화로운 나라임을 여러 번 나에게 느끼게 했다. 나는 정말 미국에 가서 살게만 해준다면 미국에 가서 살수도 있을 것이다. 이유는 나의 성격과 체질상 미국이 나에게 더 맞는 것 같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평화 민주... 등등)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가고 싶다. 이렇게 3주간 미국 미네소타에서 있은 후 우리는 LA로 갔다. 미네소타! 다시는 못 오게 될 곳이지만 나에게는 큰 경험이 된 도시였다.
나는 나의 호스트 파더와 마더, 그리고 그들의 아이인 Noah Adam 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에 스쿨버스를 타고 미네아폴리스 공항으로 갔다. 나는 눈물이 나와 잘 인사도 못하고 나왔다. 그 것이 한국에 와서도 큰 잘못 같았다.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고 잘해주신 분들이었는데...
나는 딱 3마디 밖에 못하였다. 한가지는 "I'll not forget you." 와 "Good bye" 와 "I LOVE YOU. Forever." 이라는 3마디를 눈물을 흘리며 말한 후 그 들과 헤어졌다. 내가 만약 기회가 되어 다시 미국에 간다면 그 분들은 만나고 싶다. 또 그분들이 이 한국에 온다면 내가 그만큼 보답을 해 드릴 것이다. 이렇게 작별인사를 한 후 나와 일행들은 짐을 붙이고 Mr. C 와도 작별을 하였다.
우리는 LA로 와서 가이드 아저씨들과 LA의 관광 명소를 돌아다니고 디즈니랜드도 갔었다. 디즈니 랜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상당한 오류가 있었다. 이유는 재미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 곳은 눈으로 보는 관광지 디즈니 랜드이고 캘레포니아 디즈니 랜드는 놀이기구가 많은 곳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본 디즈니랜드의 레이져 쇼는 정말 아름다웠다. 폭죽 쇼와 레이저 쇼.. 그리고 디즈니랜드 퍼레이드가 정말로 멋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몸도 가벼웠다.
나는 한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받은 후에 아빠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긴 한달 동안의 생활은 끝이 났다.

나는 기회가 되면 다시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보고 싶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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