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수몰 지역내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로 84년도에 옮겨 세웠다. 높이 3.15m,폭 1.45m의 거대한 비석으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귀부와 쌍룡을조각한 이수를 얹어 놓고 있는 작품으로 고려초기의 석조미술의 정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법경대사는 신라말부터 고려초기에 살았던 고승이다. 헌강왕 5년(879)에 태어났으며 성은 이씨이다. 17세때에 삭발하고, 가야산에 입산수도 하였으며 효공왕 10년 (906)에 당나라로 들어가 각 사원을 순회수도한 후 효공왕 16년(912)에 귀국하여 충주 정토사에 와서 포교에 힘썼다.
고려 태조 왕건이 국사로 추대하였으며 63세의 나이로 태조 24년(941)에 입적하였다. 시호를 법경이라 하였으며 대사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최언위가 글을 짓고 명필가 구족달이 쓰고 태조 26년(943)에 이 비석을 건립하였다. 주변의 정토사지는 수몰 지역내의 문화유적으로 1983년도 여름에 발굴하여 당시의 사찰규모를 확인하게 되었으나 그 주초가 원형대로 이곳에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 절터에서는『』『』등 명문이 있는 기와와 연화문 및 귀면와 등이 다수 출토되기도 하였다.
이곳에 있었던 국보 제102호인 홍법국사 실상탑과 탑비는 1915년에 서울 경북궁으로 옮겨졌다. 이 부도는 독특한 조각을 하여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법경대사자등탑은 일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고 하는데 그 위치에는 길이 180cm, 두께 30cm 정도의 잘 다듬어진 초층 기단석이 있으며 흥법국사실상탑이 있던 위치에는 140cm 길이에 폭 50cm의 연화문석등 대석이 있다. 흥법국사실상탑의 건립은 고려 현종 8년(1017)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