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쪽에는 안장을 놓은 듯 좌우로 길게 양각하고 그 안쪽에는 2줄의 선을 돌렸으며 꼭대기에 4각형으로 1단의 각형받침을 각출하여 중대석을 받치고 있다. 중대는 한 개의 돌로 된 4각형으로 각면에는 2줄의 안상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 삼산형 원좌를 중심하여 유려한 화염문을 조각하였다.
4각형 상대석은 밑면에 받침을 마련하고 복엽 8판의 앙연을 조각하였으며 측면이나 윗면에는 아무런 조각도 없다. 화사석도 4각형 돌 하나로 4모서리에 두리기둥을 모각하였으며 화창구 2면 뿐인데 다른 2면의 벽면과 창구 간지에는 문양이 없다. 옥개석 4모서리에는 귀꽃이 조각되었고 전각에도 반전이 있으나 낙수면의 경사는 급하고 합각 용머리도 둔후하여 고려시대의 옥개석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하겠다. 상륜부는 둥근 돌 하나로 되어 있는데 아랫단에는 복련을 돌렸으며 그 위 연주문을 조각한 원대가 있고 그 위에는 운문이 조각된 앙화에 보주를 조각하였다.
위와같은 구조에서 볼 때 이 석등은『방형사자석등』이라 볼 수 있으므로 보각국사 정혜원융탑앞 사자석등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4각형의 석등 양식은 고려 초기부터 조성되었던 것인데 이곳의 사자석등은 중대석 측면의 조각이나 상대석의 양식 수법을 비롯 화사석의 화창이 2구로 된점 등이 고려말의 걸작이라 일컫는 공민왕현릉 및 비정릉 석등과 흡사하다 하겠다. 그리고 연판의 조각수법이나 두리기둥의 모각의장에 있어서도 이 석등과 같은자리에 남아있는 보각국사탑의 각부와 같다. 그러므로 이 석등도 이곳의 여러 석조물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초인 1392~1394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