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단호사 법당의 주존불로봉안 되어 있는데 이곳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있고 단호사의 현 주지가 1945년에 이자리에 불상이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절을 이룩한 점으로 단호사철불은 원래 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원체 짙게 개금불사되어 오랫동안 철불인지 모른 채 지내오다가 1968년도에 철불로 밝혀졌다. 나발의 머리위에는 큼직한 육계가 있고 양 미간의 백호공에는 새로 만들어 끼운 백호가 있으며 두 눈과 코, 입술등이 정제되고 균형잡혀 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지고 목에는 삼도가 돌려져서 위엄이 있어 보이며 상호가 원만하여 더 한층 근엄한 인상을 준다. 통견한 법의는 배꼽 앞에서 유려한 활 모양의 원을 그리면서 양쪽 팔에 걸쳤으며 양쪽 어깨에서 넘겨진 의문은 뒷면에까지도 조식되었고 가슴에는 의대와 그 밑으로 군의의 결대가 보인다.
양쪽 무릎에 의문이 조각 되었고 그 위에 양쪽 발바닥이 노출되었으며 양 무릎 가운데에 산형의 앞자락이 펼쳐졌는데 그 조각은 단정하다. 수인은 양쪽 손가락 부분이 모두 파손되어 있던 것을 근래에 원형복원하였다. 이 철불은 육계와 상호 그리고 양쪽 무릎 의문 등 각부의 양식 및 조성수법으로 보아 그리고 특히 주조 자료가 철이라는 점이 대원사에 봉안되어 있는『충주철불좌상 (보물98호)』과 흡사하여 양 불상은 동시에 주조되었거나 한사람에 의해 조성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동체에 비하여 무릎이 넓직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어 균형잡힌 조성이다.
상호가 원만하나 전대에서 볼 수 있는 허심탄회한 부처님의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표정으로서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변화라고 보겠다. 제작년대는 11세기 경으로 추정되는데 이 불상은『충주철불좌상』과 함께 고려시대 철불의 중요한 유품이며 유사한 양식을 갖춘 2구의 철불이 이 지역에 전하는 점은 고려시대 철불조성에 있어 지방적 양식이 잘 표현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