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가 위치한 곳은 용전리 입석마을 선돌배기라는 곳이다. 전체적인 외형은 만주 즙안현에 있는 광개토왕릉비와 비슷하나 크기에서는 작다. 충주지역 향토사 연구단체인 예성문화연구회에 의해 1979년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 조사된 비이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비면을 갈고 글자를 새겼는데 현재는 앞면과 좌측면에서만 글자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원래 4면 비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비는 1972년 대홍수때 쓰러졌던 것을 ‘칠전팔기의 마을’이라는 표석과 함께 세우놓은 상태였으나 지금은 길 건너편에 보호각을 세워 보존관리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판독할 수 없는 글자가 많아 완전한 해석은 불가능하나 현재 앞면 서두에는 고려(고구려)대왕이 신라왕과 대대로 형제와 같이 지내기를 원하고 이에 신라왕이 공손히 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비는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는 물론 당시의 삼국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며 비의 건립연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나 대체로 장수와의 영토확장에 대한 공을 기리기 위하여 문자왕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