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의 유래 |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가야고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가야국의 가실왕은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서 가야고를 만들었다. 가실왕이 이르기를 '여러 나라의 방언이 그 성음에 있어서 서로 다르거늘 어찌 똑같을 수 있겠느냐?' 라고 하면서, 성열현(省熱縣) 사람인 악사 우륵(于勒)에게 명령하여 12곡을 짓도록 하였다.
나중에 우륵은 가야국이 장차 어지러워질 기미가 보이자 악기를 가지고 신라의 진흥왕에게 의탁하니, 진흥왕이 우륵을 받아들여 국원(지금의 충주)에서 살도록 하였다. 그리고 곧 대나마 법지(法 知) 와 계고(階古), 대사 만덕(萬德)을 보내서 가야고를 이어받도록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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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기록은 가야고를 가실왕이 만들었다고 전하지만, 가실왕의 연대는 알 수 없으므로 신라의 진흥왕(540∼576)때라고 미루어 짐작해 본다면, 대략 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74년에 경주의 황남동에서 출토된 장경호(長經壺 : 목이 긴 항아리)에 가야고를 연주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이 항아리는 신라 미추왕(262∼284) 능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장경호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가야고가 이미 3세기경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가야고의 연대를『삼국사기』보다 300년 정도 소급할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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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의 형태와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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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고는 요즘 흔히 '가야금'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가야고'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이것은 '거문고'에 '고'라는 말이 들어 있는 점과, 가야고와 비슷한 악기가 일본에서는 '고도' 라고 불리는 것이라든지, 우리 나라의 옛 기록에도 '가야고'라고 나타나는 것을 보면, 원래의 우리말 이름은 가야고였기 때문이다. 요즘 쓰고 있는 가야고에는 풍류 가야고, 산조 가야고, 개량 가야고의 세 가지가 있다. | |
풍류가야고 |
1) 유래 : '정악(正樂) 가야고' 또는 '법금'(法琴)이라고도 부르며 세 가지 중 가장 큼.2) 형태 : 통오동판의 뒷면을 파내어 잘 울리도록 만들고, 앞면에 비단실을 꼬아서 얹음.3) 특징 : 양(羊)의 귀 모양을 본뜬 양이두(羊耳頭)가 있음. 양이두의 모양에서 우리 민족의 조상이 유목 민족이었다는 사실과 가야고의 먼 조상은 유목 민족의 악기였음을 추측할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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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야고 |
01. 유래 : 산조 음악을 연주할 때 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02. 형태 : 산조음악의 특징인 깊은 농현과 빠른가락을 연주하기 쉽도록 줄과 줄 사이를 좁게 만들었기 때문에 작음. 03.특징:성종(1469~1494) 5년에 간행된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서 오늘날의 산조 가야고와 똑같은 모양의 악기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산조 가야고는 가야고 산조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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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가야고 |
01. 유래 : 이성천이 1986년 21줄 가야고를 만들었는데, 새로운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개량 가야고를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 02. 형태 : 21현 가야고는 고음이나 저음이 완전한 음을 내기 힘들고, 17현 가야고는 아무런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되고 있으며 박일훈은 15현의 가야고를 만들었음. 03. 특징 : 다양한 가야고가 개발됨으로써 가야고 음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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