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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관련 자료
작성자 성화초 등록일 09.05.07 조회수 284

 

독도 관련 자료

 

1. 독도 문제의 본질 

 

유비무환의 독도

 독 도는 바위로 이뤄진 화산섬으로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89㎞ 떨어져 있으며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과는 160㎞의 거리다. 울릉도에서 뱃길로 3시간 여 소요되고,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다. 해발 98m의 동도와 해발 168m의 서도의  주요 섬과 주변의 가제바위, 지네바위, 구멍바위, 미륵바위 등 각각의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36개의 암초로 구성된 섬이다. 250만년 이전에 형성된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이고,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된 바다제비, 슴새, 괭이갈매기의 번식지 등 다양한 그들만의 아름다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1952년 1월 28일 일본이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한․일 양국 간에 야기된 영유권 문제를 독도문제라고 한다.

  일 본 정부가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한 것은 1905년 1월 28일, 그로부터 4주 뒤인 2월 22일 시마네 현은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고 오키도사(隱岐島司)의 소관으로 둔다고 공시하였다. 한국의 광복과 함께 독도는 한국 영토로 귀속되었고, 1952년 1월 18일에 포고된 ‘인접해양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에서 독도를 한국령으로, 해양 경계선을 ‘평화선(Peace Line)이라 선언하였다. 또 1954년 8월 독도에 등대를 세워 세계 각국에 통고하는 한편 독도 주변 영해 내의 수자원을 확보하였다. 이에 일본이 항의하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옴으로써 독도문제가 발단되었다.

 

2. 독도는 우리 땅

 

  다 음의 여러 역사적인 사실들로 보아 독도는 한국 영토임이 명백하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산국(울릉도)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512년)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 조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1432년 편찬) 강원도 울진현조에는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正東)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동해 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편찬) 강원도 울진현조에도 "우산도, 울릉도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 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울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 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에 출간된 정상기의 󰡔동국지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지도첩에는 당연히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팔도지도」와 「팔도총도」

  조 선은 한때 왜구들의 침탈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섬들을 비워두는 공도정책을 폈다. 이 틈을 타서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일본 어민들의 출몰이 잦아지자, 동래어부 출신 안용복(安龍福) 일행이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한 끝에 1696년 일본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1881년 종래의 공도정책을 버리고 ‘개척령’을 반포하고 강원․경상․전라․충청도의 주민을 이주시켜 울릉도 재개발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독도도 울릉도 어민들의 여름철 어업기지로 이용되었다.

 

3. 일본의 주장과 숨은 의도

 

  일 본에서도 메이지[明治] 시대 초기에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종래 그들이 다케시마섬[竹島]이라 부르던 울릉도를 마쓰시마섬[松島]으로, 마쓰시마섬이라 부르던 독도를 다케시마섬으로 바꾸어 부르기 시작하였는데, 1894년까지도 일부 지방인들은 여전히 울릉도를 다케시마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1904 년 8월 한․일 협약을 체결하고 보호정치를 실시하게 되자,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島根縣] 고시 40호에서 독도를 그들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결국 1910년 일제에 의한 한국의 국권피탈 후부터 독도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세계지도상에는 일본명 다케시마(Takeshima), 프랑스명 리앙쿠르암초, 영국명 호네스트암초(Hornest Rocks)로 기재되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백히 할 뿐 아니라 포츠담선언에 입각한 연합군의 지령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그 영유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어 독도문제는 아직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일본은 독도문제에 대해 구상서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제의 등 주로 외교적 방식으로 대응을 해왔다. 일본정부는 외교문서상의 논쟁을 계속해 걸어오다가 한국정부에 보내온 1954년 9월 25일자 구술서에서 '독도'(죽도) 문제는 국제법의 기본적 원리 해석을 포함한 '영유권 분쟁'이므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그 최종결정을 위임하자고 제안해왔다. 물론 이 때 일본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영유권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한국을 제소하여 위임하였다.

 

4. 독도(獨島)의 역사

  독 도가 처음 우리나라의 문헌에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이며, 이 자료에 의하면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라는 두 개의 섬이 우산국이라는 하나의 독립국을 형성하고 있다. 신라 지증왕13년(512년)에 우산국을 정복하였으며, 우산국은 신라에 매년 토산물을 바쳤다고 되어있다.

  17세기 말 일본과의 최초의 영유권 분쟁이 있었고, 조선 숙종때 2차례에 걸친 일본 본토 내에서의 안용복의 활약으로 울릉도,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일본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문서를 보내옴으로서 일단락 되었다.

 1900 년(고종 37년)엔 대한제국 칙령 제4호로 울릉도는 울도로 개칭하고, 강원도 울진현에 속해 있던 울릉도와 독도를 묶어 독립군으로 설치, 군청 관할 구역을 울릉도 전체와 죽도 및 석도라고 못박았다.(죽도는 울릉도 섬 앞 실제 죽도이고, 석도가 독도를 의미)

그 러나 1904년 조·일 의정서에 의거 일본 해군이 독도에 부대를 설치했으며,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일본 시마네(도근)현 고시를 통해 『다케시마(독도)를 시마네현의 소관 아래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이 사실을 1906년 4월에 대한제국에 통보해왔다.

그 뒤 일제가 패망하고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scapin(연합국 최고 상부지령)677호로 독도가 일본 영토로부터 분리되었음을 선언하고, 이를 한국에 반환했다.

  1948 년 8월 15일에 남측만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정부는 독도에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를 부여하는 행정조치를 취하였으며, 1952년 1월18일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통칭 평화선)'을 발표했다. 이에 일본은 열흘 뒤인 1952년 1월28일 평화선 안에 포함된 독도(일본 호칭 다케시마竹島)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외교문서를 보내 왔다. 이것이 독도 영유권 논쟁의 시작이다.

  한국정부와 일본정부 사이에 외교문서를 통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는 1953년 6월27일, 6월28일, 7월1일, 7월28일 일본 순시선에 관리 및 청년들을 태우고 와서 독도에 상륙시켰으며,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해 일본인들을 몰아낸 적도 있다.

  이후 일본은 우익단체 등의 이름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해오다 7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총리와 외무장관 등 당국자가 나서 공식·비공식 발언을 통해 외교 분쟁을 일으켰다.

독도는 1996년 일본정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선포를 기화로 다시 영유권분쟁이 제기되었으며, 1998년 한일 신어업협정이 맺어졌다.

  신 어업협정에서는 울릉도 기점 35해리와 오키도 기점 35해리까지를 한·일 양국의 eez로 하고 그 중간에 있는 ‘독도'를 포함한 수역을 ‘중간수역'으로 설정하였다. 그 결과 '독도'는 양국이 공동관리하는 공해성격의 수역인 ‘중간수역'에 포함됐다.

  이후 시마네(도근)현 일부 주민들이 독도로 호적을 옮기자 한국 시민단체들은 ‘독도로 호적 옮기기'운동을 벌였다.

  5. 독도관련 사이트 안내

    http://www.dokdocenter.org/ 독도본부

     http://www.dokdo.go.kr/ 독도사랑

     http://www.cybertokdo.com/사이버독도닷컴

     http://cafe.daum.net/daumtokdo 다음독도수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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