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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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강정선 | 등록일 | 22.12.19 | 조회수 | 38 |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p7) 소설의 시작이 강렬하다. 문체는 담백하고 간결해서 읽기 쉽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념의 문제를 빨치산인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삶을 통해 풀어내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통찰보다 이러한 이념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보여준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담담하게 말하고 이후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아버지의 손님들을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빨치산인 형을 두어 평생을 사상범의 의심을 받으며 살아왔던 ‘작은아버지’, 같은 이념을 가진 평생의 동반자 ‘어머니’, 아버지와 담배를 나눠 피는 ‘담배 친구’ 고등학생, 빨치산의 딸이라는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에 빠져있는 ‘나’. 자신들의 위치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무게를 견디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머를 곁들여 소개된다. 아버지는 생전 신문 보급소에서 일을 하는 데, 그 보급소는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보급한다. 아버지는 한겨레만 읽고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조선일보만 읽는다. 이 둘은 각자의 이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늘 으르렁 대지만 서로 늘 ‘그만한 친구는 없다’ 라며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p265) 소설의 마지막에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드디어 아버지를 이해한다. 아버지가 가진 빨치산으로서의 단면이 아닌 여러 가지 얼굴들을 마주하고 아픔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화해한다. 이 소설은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전하지만 읽는 사람에게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올 해 읽은 소설 중 가장 빨리 책장을 넘긴 책이지만 읽고 난 뒤 따뜻해졌던 마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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