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문화역사 인물 - 우륵
고대 삼국시대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음악가.
[활동사항]
우륵
은 가야의 가실왕(嘉實王) 시대 사람으로 현 경상북도 고령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성열현(省熱縣)에서 태어났다.
가실왕
의 재위 기간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륵
이 귀화했을 당시 신라가
진흥왕
(540~575)의 재위 기간이었던 것으로 보아
우륵
도 500년대 초반에 태어나 중반을 넘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금은 원래 가야국의 악기였다. 가야국의
가실왕
이 재위 당시 중국의 쟁(箏)을 모방하여 12현 가야금을 만들도록 한 데 이어
우륵
으로 하여금 가야금 악곡(樂曲)을 작곡하게 하였다. 그것이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등 12곡이다. 그러나
우륵
은 550년경 가야국의 내부 사정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들고 신라에 귀화했으며, 신라
진흥왕
은 그를 현 충주 지역인 국원경에서 편안히 살도록 배려하였다.
그로 인해
우륵
은 자신의 음악적 재질을 충분히 발휘하여 가야금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양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제자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가야국에서 활동하던 당시부터 음악을 함께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문(泥文)
과,
진흥왕
이 가야금을 배우도록 국원경으로 보낸
법지(法知)
,
계고(階古)
, 그리고
만덕(萬德)
이었다. 그 후
우륵
의 음악은 신라의 대악(大樂)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더불어
진흥왕
에 의하여 가야금곡이 궁중 음악이 되고 하림조(河臨調)와 눈죽조(嫩竹調)의 2조(調)가 생겨 모두 185곡의 가야금곡이 남게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우륵
의 주요 작품으로는 가야국에서 활동할 당시 왕명에 따라 지은 가야금 음악 12곡인 「하가라도」, 「상가라도」, 「보기(寶伎)」, 「달이(達已)」, 「사물(思勿)」, 「물혜(勿慧)」, 「하기물(下奇物)」, 「사자기(師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상기물(上奇物)」을 들 수 있다. 이들 곡이름은 대부분 당시의 군·현의 이름에서 따 온 것으로 해당 지역의 민요 연구에 긴요한 자료가 된다. 충주의 금휴포(琴休浦)와
탄금대(彈琴臺)
도 모두 그 이름이
우륵
에게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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