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기념일 계기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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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노미희 | 등록일 | 12.04.16 | 조회수 | 273 | |
자성록 14쪽 4월 계기 교육 자료입니다.
1960년 4월 19일에 3.15부정 선거와 이승만 정권의 독재 부패에 항거하는 시위로 자유당 정권을 붕괴 시킨 혁명이다. 5.16 혁명 이후 의거로 규정하여 일반화 되었다가 문민정부 수립 후 4.19 혁명으로 승화되었고 서울 강북 구 수유 동 4.19 묘역이 35주년을 맞이하여 국립묘지로 승격하였다.
*원인 ( 3.15 부정 선거 ) 59년 보성, 양산, 영일 등의 재선거에서 소위 3인조 완장부대를 동원하여 절대 다수의 확정 표를 얻은 자유당은 이 방법을 60년 3월 15일에 실시하는 정. 부통령 선거에 활용할 것을 획책하자 야당 측에서는 선거에서의 승산보다 부정 선거 방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선거전에서 여당은 청중의 강제적 동원, 야당의 선거 연설 방해, 모의 투표 실시, 야당운동원의 살상, 유령 유권자 조작 등을 자행하였다.
*경과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반대하여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이에 대해 무차별 발포를 감행했고 다수의 시민 학생들을 체포 구금했다. 이에 자유당 정권은 공산당의 개입설을 주장하여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던 중 4월 11일 1차 데모 때 행방불명이 되었던 김주열의 시체가 눈에 체루 탄이 박힌 채 바다에 떠오르자 마산 시민의 분노는 다시 폭발하여 2차 마산 데모가 일어났다. 서울에서도 제 2차 마산 사건이 있은 지 1주일 후인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데모가 있었는데 이들이 귀교 도중 폭력배들에게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태가 원인이 되어 4월 19일 서울의 전 대학 중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경찰의 제지를 무릅쓰고 시위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에 동조하는 시민들도 호응을 얻었다. 당황한 자유당 정권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결과 4월 22일 장면 부통령 사임, 이기붕 부통령 당선 사퇴, 23일 이승만 대통령 자유당 총재직 사퇴 등 일련의 조치가 뒤따랐다. 이에 허정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수립되고 . 이승만은 5월 29일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고 국회는 정부형태를 대통령 중심에서 내각 책임제로 헌법을 개정한 다음 총사퇴하고 7월 29일 실시된 총선거에 의해 민주당의 장면을 내각으로 하는 정부가 세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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