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사진/임동빈 |
|
| 우리는 어딜 가나 영어로 된 간판을 보고 산다. 영어를 피해서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국어도 국어가 아닌 영어로 배우자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동네일을 보기 위해 때때로 찾던 동사무소도 이제는 어디로 가고 없다. 대신 ‘센터’로 가야한다.
하도 ‘미쿡말’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다보니 우리말을 배우기 위해 ‘글방’을 가야할지 ‘스쿨’을 가야할지 모르는 세태. 그러나 이런 ‘영어만능시대’에 살면서도 ‘우리말 전성시대’를 지켜가고 있는 청주의 한 여고생이 ‘뉴스의 인물’이 됐다.
지난달 10일 열린 11회 KBS 한국어능력시험 결과가 나온 지난 8월21일. 이 행사 11회 만에 처음으로 만점인 990점을 받은 사람이 나왔다는 것이 ‘뉴스’였고, 그 주인공이 청주 대성고(교장 박원규·☏215-4912) 고해강양(17)으로 밝혀지면서 해강양은 일약 충청도 ‘뉴스의 인물’로 등장했다.
해강양은 91년 청주에서 감정평가사로 일하는 아버지 고규봉씨(50)와 어머니 정미옥씨(47) 사이에서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해강(偕康)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함께하는 모든 것이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 주셨어요.”
용암초-일신여중을 졸업하고 대성고에 재학 중인 해강양은 친구들 사이에서 ‘책 많이 보는 친구’, ‘우리말 달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제게 읽는 능력은 일종의 ‘육감’ 같은 거에요.”
5일 오후 대성고 교정에서 만난 해강양의 만점 소감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그녀는 어머니가 사주시는 책들을 한자리에 앉아 다 읽곤 했다. 한 단어씩 차례로 읽어가며 이해하기 보단 그냥 통째로 내용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읽으며 모아놓은 책들이 지금은 방 한 칸을 서재로 만들어 버릴 정도가 됐다. 그녀는 책을 통해 우리말에 눈을 떴고, 책속 행간에서 즐거운 상상력을 키웠다.
“읽는 걸 정말 좋아하는 저에게 독서는 숨 쉬는 일하고 같아요. 독서가 저의 가장 큰 경쟁력이자 힘이죠.”
이렇게 우리말 소양을 키워가던 해강양은 2년 전 특목고 진학을 위해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게 됐다. 당시 점수는 670점. 이번 시험은 자신의 우리말 실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참가하게 됐다. 평소 독서로 단련된 그녀에게 시험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학교 언어영역시험에서 조금 확장된 수준 정도였죠.”
시험을 치룬 며칠 뒤 그녀는 한 통의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만점 축하합니다. 전화요망’. 짧은 문구가 전부였다. 처음엔 이게 언론에서 주의하라고 하는 ‘보이스 피싱’ 사기 전화인줄 알았다.
해강양은 시험 주최 측이 계속 학교와 집으로 연락을 하고, 점수가 발표돼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만점사실을 믿게 됐다.
그녀는 “만점이라고 연락을 받았지만 제가 정말 그렇게 잘한 것인지 실감이 나진 않았어요”라며 당시를 기억했다. 발표가 난 뒤 친구들로부터 ‘그게 네가 정말 맞냐?’는 전화도 많이 받았다.
지난 2005년부터 11회째 실시되고 있는 KBS 한국어능력시험에는 모두 10만명 이상이 응시했고, 이번 시험에도 9500여명이 응시했다.
해강양은 청소년 등급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이는 상급학교 진학에 참고할 수 있도록 분류한 것 뿐, 성인등급과 출제문제, 점수산출방식 등이 일치해 명실공히 이 시험 최초의 만점자인 것이다.
“이 시험을 목표로 얼마나 공부했는지 보다는 평소 우리말을 어떻게 올바로 사용하는지가 중요하죠.”
그녀는 평소의 언어습관이 좋은 점수로 이어진 것 뿐이라며 생활 속의 우리말 사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과 ‘신문활용교육(NIE)’도 큰 힘이 됐다.
대성고에서는 오행오무(五行五無) 운동을 펼치고 있고 그 중 행하여야 할 하나가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이다. 또 주 1회 신문활용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우리말 습관을 길러주고 있다.
‘우리말 달인’이 된 그녀에게 우리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해강양은 “어려운 책을 보기보단 자기수준에 맞는 책을 봐야 한다”며 “초등학생이라면 어른 신문보다 어린이 신문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평소 우리말을 제대로 써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온 해강양은 친구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에도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학교 신문반 ‘마루’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학교신문을 통해 학우들이 흔히 잘못 사용하기 쉬운 통신체 언어를 교정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세상이 넓어져서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야 하는데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 일들을 올바른 언어로 바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어요.”
어린 시절 컴퓨터 엔지니어가 되는 것을 꿈꾸던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에 만난 한 신문기자의 취재태도 등을 보고 ‘기자’의 꿈을 꾸게 됐다. 그 뒤 그 기자의 모습은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역할모델’이다.
“이름도 모르는 한 신문기자였어요. 어릴 때였지만 짧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지금에도 저의 ‘역할모델’이 되고 있어요.”
앞으로 그녀는 언론관련학과로 진학해 세상의 일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기자’가 되고 싶단다.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해 그녀는 우리말 공부와 함께 틈틈이 사진도 찍고 있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경찰서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신출내기 기자’라고 말하는 17세 여고생 고해강양. 어린나이에도 꿈을 향해 끊임없는 동기부여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말 달인 고해강’을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