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불탈 때 |
|||||
---|---|---|---|---|---|
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5.07.05 | 조회수 | 4 |
첨부파일 |
|
||||
숲이 불탈 때
인간을 향한 자연의 마지막 경고, 초대형 산불이 울리다
조엘 자스크 저/이채영 역 | 필로소픽 | 2025년 04월 05일
목차
머리말
1. 메가파이어를 향해 2. 불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한다 3. 산불은 “정상적인” 현상인가? 4. 불에 내어줘야 하는 것 5. 불, “살인 괴물” 6. 불 산업 복합체의 탄생 7. 숲이라고 다 같은 숲이 아니다 8. 문제의 국토 개발 9. 숲속의 집 10. 기후 온난화의 문제 11. 산불세 12. 불의 문화 13. 자연에는 불이 필요하다 14. 불의 소멸 15. 최악의 시나리오 16. “땅 청소하기” : 숲을 가꾸고 경관을 열다 17. “새들이 비처럼 내렸어요” 18. 경관의 상실 19. 메가파이어가 경관에 대해 말해 주는 것 20. 미래가 없는 세계 21. 혐오 22. 화염 테러
맺음말: “불의 문화”를 향해
미주
참고문헌
감사의 말
책소개
오늘날 지구곳곳에서 발생하는 초대형 산불, ‘메가파이어’는 과거의 산불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류가 초래한 기후 변화로 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 불에 타기 좋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메가파이어를 잠재우려면 비 또는 눈이 내리거나, 주변 모든 것을 집어삼킨 불이 스스로 잠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외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피해 면적이 가장 컸던 상위 세 건의 산불 역시 전부 21세기에 발생했다. 불이 날 시기를 알고, 첨단 장비로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춰도 점점 피해가 커져 가는 실정이다. 이렇듯 전 지구를 휩쓸면서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산산이 부수는 메가파이어는, 우리에게 기어코 무엇을 경고하려는 것일까? 이 책은 산불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두 가지 관점을 검토한다. 한쪽에는 산업자본주의 논리 아래 자연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면서 산불을 철저히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쪽에는 ‘본질적 가치’를 지닌 자연을 불가침한 영역으로 여기며, 자연의 소관인 산불을 방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대립하는 듯한 두 입장은 사실 자연과 인간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사고를 공고하게 하는 공범이자, 메가파이어라는 재앙을 불러온 주범이다. 저자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 자연과 인간이 서로에게 적응하며 함께 진화해 온 역사를 되짚어 나간다. 오늘날의 자연은 인간과 별개로 존재하는 ‘원시 자연’이 아닌, 인간에 의해 형성되었고 인간에게 익숙해진 ‘경관’임을 발견한다. 아이가 독립적으로 자라려면 조건이 마련돼야 하듯이 경관이 독립적으로 유지되려면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통제된 불’을 피우고 땅을 돌보던 ‘불의 문화’를 되찾아야 한다. 화마에 갇힌 인류의 막다른 길에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공생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이 초대형 산불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문제이다. --- 「머리말」 중에서
이로써 메가파이어는 우리와 자연 환경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인식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대형 산불은 우리가 접어든 인류세 시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징후일까? 아니면 숲이 처음 생겨난 이래 거쳐 온 오래된 과정을 보여 주는 증거일까? 인간은 불의 피해자인가, 아니면 그 원인인가? 불은 삶인가, 아니면 죽음인가? --- 「메가파이어를 향해」 중에서
산불에 관해서는 그 결과가 훨씬 더 파괴적임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불에 타지 않는 건축 자재를 사용한다거나 거주지를 숲에서 멀리 떨어트리고, 교육을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재정비를 하는 대신 그 현상 자체를 통제하려는 이상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메가파이어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마치 폭발하는 화산 위에 뚜껑을 덮으려는 것만큼이나 헛된 일이다. --- 「불 산업 복합체의 탄생」 중에서
우리가 알고 영위하는 자연은 인간이 일으킨 불에 의해 형성됐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는 것처럼, 자연도 인간에게 의존한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줄어들수록 산불의 심각성은 커진다. 산불 현상은 그 어떤 다른 현상보다도 이를 더 강력하게 증명함으로써 자연 현상과 인간 활동 사이의 진정한 연속성을 인정하게끔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힘은 기존의 사고방식이 상정하는 단절을 대체해, 자연에 대항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이 아닌 자연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 「산불세」 중에서
자연은 “내버려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지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하며, 이를 위해 인간이 정기적으로 불을 지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 「불의 소멸」 중에서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독립성을 획득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변 환경이 아이가 독립성을 지닐 수 있게끔 하는 수단을 제공할 때에만 그렇다. 즉 아이는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는 아니지만, 필요한 상황 조건이 제공될 때 비로소 그러한 존재가 된다. 따라서 자연의 독립성이 적절한 보살핌과 축적된 지식, 이타적이고 다양한 관리 관행에 기반한다는 사실은 전혀 역설적이지 않다. --- 「“땅 청소하기”: 숲을 가꾸고 경관을 열다」 중에서
익숙하거나 좋아했던 경관의 소멸은 피해자들에게 절대적인 비극이다. 어떤 상징적인 장소가 사라진 경우에는 그러한 현실을 마주한 전체 인구가 고아가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 「경관의 상실」 중에서
우리는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근육과 사고, 개개인의 정체성을 발전시킨다. 머릿속에서 형성된 환경의 이미지는 우리의 행동 및 그 행동으로 기대하는 결과에 통합된다. 산불로 인해 파괴되는 것은 기억의 상태로 계속 남아 있을 이미지가 아니라, 이 이미지를 생산하고 유지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련의 조건들이다. 심지어 산불은 상호작용의 연속성까지도 파괴한다. 이러한 연속성이 부재한다면 개인의 존재는 파편화될 것이다. --- 「메가파이어가 경관에 대해 말해 주는 것」 중에서
현재 사용 중인 이분법적 분류와 구분 체계는 해체되고 있다. 이러한 체계가 지금까지 우리를 몰고 왔던 방향으로 계속해서 더 나아가려는 노력은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이제 우리는 “불의 문화”를 되찾아야 한다. 지속 가능한 문명에 적합한 방식으로 불을 다루고 땅을 경작해 돌보며, 물질적 · 정신적 양식을 생산하는 행위 사이의 동맹을 되살려야 한다. 메가파이어에 대응한다는 것은 문명을 하나의 문화로 사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맺음말: “불의 문화”를 향해」 중에서
저 : 조엘 자스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전공은 존 듀이와 사회철학으로, 민주적 참여 방식에 대한 여러 저서를 출간하며 참여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 농업, 예술, 공공정책, 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민주주의와 생태학의 상호 연결성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동물원도시 Zoocities》, 《어딘가에 서 있다는 것 Se tenir quelque part sur la terre》, 《생태학과 민주주의 Ecologie et democratie》 등을 저술했으며, 특히 《들판의 민주주의La Democratie aux champs》에서는 농업 실천과 공동체를 민주주의의 요람으로 제시했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산하 마르셀 모스 연구소, 비교인식론 및 작업학 센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센터에서 활동 중이다.
역 : 이채영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외국어교육과 불어전공에서 ‘프랑스어 부정(否定)에 관한 정신역학론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학교 언어학 및 언어 교수법 전공에서 ‘프랑스어 학술 구어 담화에서의 표현에 관한 연구’로 박사과정 중에 있다. 옮긴 책으로는 《몽테뉴 여행기》(2020)와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삶에 맞서》(2021), 《쇼펜하우어를 마주하며》(근간), 《쇼아》(근간)가 있고, 지은 책으로 《고흐 아저씨와 함께 떠나는 색칠여행》(2016)이 있다. |
이전글 | 영화 속 술꾼들이 애용하는 납작한 ‘그거’ --- 그리고 피츠제럴드 |
---|---|
다음글 | 병뚜껑에 꼬리처럼 달린 ‘그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