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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봄비와 정원사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5.06.05 조회수 3

 

 

 

봄비와 정원사

 

어느 괴짜 예술가의 치유하는 정원 그리고 인생 이야기

마크 헤이머 저/황재준 역 | 산현글방(산현재) | 2024년 02월 02일




목차

1 봄비 바다에서의 모험, 보물섬, 작은 목조 헛간
2 정원사 거베라, 우산, 아연, 양심의 가책, 나비넥타이
3 봄비 공구, 씨앗, 청소하며 부른 노래, 책, 그리고 도착지 없는 기차
4 정원사 꽃꽂이, 뼈대만 남은 새들, 무너진 헛간, 그리고 작별하기
5 봄비 백목질부터 카모마일까지
6 정원사 금성, 루시퍼, 해파리, 햇살, 갈라진 목소리
7 봄비 말 농장, 안타이오스, 투구꽃, 죽어가는 말벌
8 정원사 고물로 가득 찬 배, 추억, 행복, 토르
9 봄비 불가사리, 주머니칼, 깃털 그리고 까치의 혀
10 정원사 새로운 에덴동산, 야생에 대한 경외
11 봄비 개밋둑, 두더지가 쌓은 흙 두둑, 땋은 머리
12 정원사 끈의 길이, 파란색 외바퀴 손수레
13 봄비 깡통 무전기, 민달팽이 느림보
14 정원사 꽃들이 늘어선 길 걷기, 개, 유령, 녹색 남자
15 봄비 장군풀 잎과 투구꽃, 할머니의 젖소와 수맥 찾기
16 정원사 손이 세 개라면 좋을 텐데, 식물 목록, 씨앗 분류하기, 반짝이는 물줄기
17 봄비 키스, 아름다운 상처
18 정원사 감정, 욕망, 괴로움, 그리고 연주회
19 봄비 채소 기르기, 잃어버린 상자
20 정원사 자유의지, 선택, 실낙원
21 봄비 세 사람이 함께 마시는 차, 블랙풀 막대사탕
22 정원사 관찰자, 영화 감상, 고슴도치들
23 봄비 코끼리들, 분칠을 한 말들, 몸통이 절반인 여인, 글래스고에서 온 사람들
24 정원사 물망초, 선승, 색과 향
25 봄비 겨울, 영광의 손, 집시 로즈 리는 떠나고, 녹
26 정원사 실낙원
27 봄비 먼지의 정착, 술 퍼마시기, 엄마, 방랑 생활
28 정원사 복락원
백과사전
일러스트레이션
감사의 말


책소개

서사(소설)적 성격과 철학적 성격이 혼융된 자연 에세이(문학). 어느 괴짜 예술가의 인생 회고록이자 치유력 넘치는 명상적인 산문. 괴짜다운 삶의 궤적, 시적이고 유려한 문장, 폐부를 찌르는 지혜가 특색이다. 화가, 작가, 정원사인 저자는 정원을 주제 삼아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유년기부터 오늘의 자족하는 삶까지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을 때로는 시적인 언어로, 때로는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책의 홀수 장(봄비)에서는 소년 시절 이야기가, 짝수 장(정원사)에서는 현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홀수 장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 겪은 어둠과 자연(정원)과의 인연을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기쁘게 회고하며 어린이와 어린 시절에 대한 사색을 들려준다. 한편, 짝수 장에서 독자는 노년기에 이른 저자의 정원 가꾸는 나날을 접하는 가운데 식물과 동물과 정원, 야생과 자연, 치유와 명상, 선과 예술, 단순한 삶과 뿌리내린 삶, 자족과 행복, 가족과 인생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만나게 된다.


책 속으로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이 유리병처럼 깨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이거나,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뭔가를 정해서 그 속을 채워줘야 하는 너덜너덜한 빈 가방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마치 그릇이라도 되는 양 우리의 생각을 그 안에 담으려고 그들을 세뇌하지만, 아이들은 우리들의 생각과 달리 어른들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 p.16

흰 점과 각진 끝으로 멋을 낸, 폭이 좁은 파란색 나비넥타이를 하나 샀다. 매고 있던 긴 줄무늬 넥타이를 풀어 봉제 부분이 조금 밖으로 나올 만큼 돌돌 말아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뿌연 거울 앞에서 몇 번을 시도한 끝에,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지기는 했어도 그럭저럭 예쁜 모양으로 나비넥타이를 매는 것에 성공했다. 나비넥타이의 세계에서는 어딘가 살짝 흠결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 p.22

열여섯 살 때 소년은 시골 도처를 떠돌아다녔다. 들판 한 구석에서는 고슴도치처럼, 강가에서는 물의 요정처럼, 숲에서는 여우처럼 잠을 잤다. 살 집이 없었기 때문에 정처 없는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있는 히피들을 우연히 만났다.
--- p.49

얼마 후 눈을 뜨면서 내가 세상에 작은 평화를 더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극도로 고요한 명상을 하면 일상의 수많은 사소함에도 초연해져서, 무無와 유有의 차이를 거의 못 느끼기 시작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나는 굶어 죽는 것마저 지극히 행복할 것 같다.
--- p.61

어느 바닷가에 갔을 때, 우윳빛 알과 정자와 뒤섞인 수백만 개체의 해파리 떼로 가득 찬 바다가 파스텔 톤의 노란색, 분홍색, 파란색으로 빛나던 기억도 떠오른다. 해파리는 떼를 지어 폴립polyp 모양을 이루고 바닥으로 내려간다. 그러고 나서 성장하고 발달하여 또 다른 해파리 떼가 새로 생겨나고, 적당한 날씨가 되어 안이 들여다 보일 만큼 바다에 빛이 들어오면 새로운 해파리들이 무리별로 떼지어 다닌다. 어떤 해파리들은 다시 폴립 모양으로 뭉쳐 불사의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 p.78

추억에는 항상 멜랑콜리가 동반된다. 심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릴 때도, 모든 것이 내 손등처럼 누렇게 변해서는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전 손택은 모든 사진은 죽음에 대한 상기라고 했다. 30분의 1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 영원히 사라지고, 피사체의 영혼은 검은색으로 변한 은빛 할로겐 화합물의 결정체에 붙들려 광택이 나는 종이 한 조각 위 젤라틴 층에 갇힌다. 그림보다 사진에 멜랑콜리가 더 많이 이입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림은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담고 있고, 그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대상이 움직이거나 성장하기 때문이다.
--- p.102~103

무질서하다는 이유로 지상의 지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조경과 관상에만 집착하는 정원사들은 자연의 거친 어수선함을 길들이려고 했고, 잘 조직된 정확한 설계로 그 어수선함을 완전히 근절하려고 했다. 그에 더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이국풍의 초목 전시관들을 정원에 건설해왔다. 마녀 또는 드루이드이자 땅에 무릎 꿇고 지구를 숭배하는 사람인 동시에, 손톱과 지저분한 무릎 아래에 흙을 묻혀가면서 마음 깊은 곳에 평화를 간직한 채 소박하게 땅을 일구며 노동하는 대다수의 나 같은 정원사들은, 자신들이 흙의 자식이라는 것과 지구의 소산이라는 것과 하나의 떨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p.129~130

그녀는 관계, 아이들, 사랑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쓴다. 나는 언어, 이미지, 지구 안에 정원을 짓는다. 우리는 서로의 작업을 돕는다. 우리는 둘 다 여리고 연약한 존재들이라서 창작열이 억눌린다는 것은 우리의 일부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서로를 보듬고 돌본다. 우리는 함께 기대고 있는 꽃송이들이다.
--- p.148

사실 나는 내가 심은 것들보다 그 자리에 스스로 무정부적으로 존재하는 야생의 식물들을 더 사랑한다. 별봄맞이꽃, 물망초, 냉이 같은 야생 식물들이, 개미가 모래를 뚫고 밖으로 나오는 벽 아래 보도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라고 있다. 나는 도로 끝 배수로에서 돋아난 이끼, 자갈로 된 오솔길을 덮은 지의류, 그리고 성직자와 신도들, 장 보러 가는 이들과 학생들,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해 외출한 어르신들이 매일 밟는 자갈 사이의 틈에 피어난 민들레를 사랑한다.
--- p.161

할머니가 집에 오셨다. 덩치가 크고 양털로 짠 옷을 입은 할머니는 안락의자에 앉으려고 몸을 숙일 때마다 큰 한숨을 내쉰다. 그녀가 의자에 걸터앉는 마지막 순간에는 항상 용수철에서 쿵 하는 소리와 끽 하는 소리가 난다. 할머니는 당신의 커다란 털실로 짠 가방을 뒤적이더니 그에게 줄 재킷을 하나 꺼낸다.
--- p.179

왼쪽으로는 고사리처럼 생긴 나도고수 옆에 잎이 무성한 안젤리카가 모여 사는 그늘진 숲이 있다. 안젤리카 꽃이 피면, 그 납작한 꽃부리에 여름에는 꽃등에가 몰려들고 겨울에 는 작은 새들이 모일 것이다. 가지 아래쪽 고사리 덤불에 산비둘기, 까치, 울새, 굴뚝새가 날아든다. 찌르레기, 참새, 푸른박새는 멀리에서부터 물을 마시러 배가 불룩한 물통 근처로 날아온다. 녀석들은 쥐며느리와 민달팽이를 쪼아 먹고, 둥지를 트는 데 사용할 잔가지들을 모으기 위해 낡은 통나무 조각들 위를 뛰어다닌다.
--- p.229

요 며칠 내내 그는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엄마가 잠에 빠져 있거나 병원에 입원 중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엄마는 울기만 했다―그녀는 펍이나 어두운 광산 마을이, 모든 것에 붙어 있는 석탄 가루가, 그녀에게 이해가 안 가는 가게들과 억양이 못마땅했다. 그러더니 침대로 기어들었다.
--- p.289

저 : 마크 헤이머 (Marc Hamer)
시인, 정원사, 전직 두더지 사냥꾼. 북잉글랜드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0대 초반부터 50여 년을 채식주의자로 살아왔다. 어머니의 죽음 후 아버지의 반강제적 권유로 열여섯에 집을 나왔다.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대부분 홀로 걸으며 야외의 생울타리 밑에서, 숲속에서, 강둑에서 홈리스로 지냈다. 나무 아래, 별 아래에서 흙과 새와 벌레들과 함께 잠을 자며 매 계절을 보내던 그는,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위험한 어른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이 시절에 경험한 자연에서의 삶은 그의 여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랑자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한 뒤 철도역 신호소에서 7년을 근속했고, 이후 맨체스터에서 예술대학을 다니며 미술과 문학을 공부했다. 서른 즈음 웨일스로 이주해 갤러리와 식당 등에서 일했으며 그 외에 돌담을 쌓는 돌장이, 그래픽 디자이너, 잡지 에디터, 교도소 교사 등 여러 직업을 거친 끝에 정원사가 되었다. 20여 년간 정원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위해 두더지잡이를 병행했다. 두더지 잡는 일을 그만두기까지의 다층적 이야기를 담은 데뷔작 『두더지 잡기』는 2019 웨인라이트상 후보에 올랐으며 14개국에 번역·출간되었다. 다수의 문예지에 시를 발표했고, 다른 저서로 『씨앗에서 먼지로Seed to Dust』가 있다. 정원사로 살았지만 한 번도 자신의 정원을 가져본 적은 없다.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에 거주하며 소설가인 부인 케이트와 함께 노년을 보내고 있다.

역 : 황재준
1970년대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20여 년간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아침에 시작하는 회사 일과 저녁에 시작하는 번역 일 모두 자기 수행이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깨달음의 이야기로써 내 손에 있는 화와 미움의 칼을 조용히 앗아가는 책들을 좋아한다. 나의 번역으로 독자들의 책 읽는 즐거움이 커지고, 세상에 좋은 것이 더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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