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식대로 살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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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5.04.11 | 조회수 | 5 |
나는 내식대로 살아왔다공병우 자서전공병우 | 대원사 | 2002년 12월 16일 목차1. 팔삭둥이 쌍둥이 2. 내 인생의 길을 바꾼 한 편의 작문 3. 스무 살에 합격한 의사 검정시험 4. 되찾은 나라에서 시작한 일들 5. 한글 타자기를 만들기까지 6. 6 · 25 전쟁과 내 인생 7. "공박사가 미쳤다!" 8. 고독한 투쟁 9. 일흔두 살에 배우기 시작한 사진 10. 미국 땅에 옮겨 차린 연구실 11. 사람답게 살고 싶어 -종교관, 인생관 12. 내가 좋아하는 것들 13. 내 가슴은 영원히 뜨겁다 책소개 오래 전에 한국일보사에서 한국 고집쟁이 열 명을 뽑았을 때 1위가 이승만, 3위가 최현배, 6위가 공병우였다. 그때 뽑힌 고집쟁이 중에 지금 생존해 계신 분은 공 박사뿐이다. 그러니까 현재로는 단연 한국 최고의 고집쟁이인 셈이다. 이 고집과 서양식 합리적 사고 방식이 어우러진 것이 바로 "공병우식"이다. 외양간 앞에서 팔삭둥이로 남보다 두 달 빨리 세상에 태어난 탓인지, 공박사는 일생 동안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해본 것이 별로 없고 매사를 공병우식으로 해치워 온 사람이다. 학교를 다녀도 끝까지 제대로 다니지 않고 월반으로 빨리 끝을 내었고, 의과 대학을 다니지 않고 강습소와 독학으로 의사가 되었고, 박사 학위도 남들이 하는 절반도 못 되어서 독학으로 땄고, 타자기를 만들어도 예쁜 모양보다는 속도를 중시하여 속도 타자기를 만들었고, 낮에 하는 결혼식은 시간 낭비라고 반대하고, 그 유명한 공 안과 서립 개원 기념 행사 한번 하지 않았고, 문지방 썰어 없앴고, 간장독 깨어 없앴고, 사과 궤짝 포개어 침대 만들었고, 며느리에게 폐백 인사 절하는 것 집어치우고 악수나 한번 하자고 떼웠고, 지금도 5분 만에 깎는 이발소 아니면 안 가고... 책 속으로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는데, 나는 '내일 지구가 핵 폭발로 박살이 난다 해도 내 꿈을 심겠다'는 심정이다. 얼마만큼 나의 이같은 꿈을 이루다가 갈지는 몰라도,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할 생각이다. --- p.222 목숨을 건져 준 한글 타자기 그 때부터 주로 미국에 출원한 한글 타자기의 특허 내용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그는 내가 인민 공화국을 위해 타자기 설계도를 만들어 바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힘없이 대답을 했다. 내 대답이 미지근하게 들렸던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질문을 되풀이했다. '제가 우리 민족을 위해 연구한 것인데 왜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 당시 이미 죽을 각오를 했고 또 극도로 쇠약해져서 기운도 없었고, 힘차게 대답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꼭 해 놓을 터이니 살려 달라는 애원도 하지 않았다. 나의 미온적인 대답이 그를 못마땅하게 한 것 같았다. 그런 태도를 나는 눈치채고 ' 저는 제가 한다고 말한 일은 꼭 하는 사람입니다. 제 성질이 원래 앞일을 미리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 해 놓고 나서야 자랑하는 그런 편입니다.' 나는 내 개인적인 성품을 말하였다. 그는 나의 이같은 특성적인 개성을 인정하고, 꼭 해 놓을 사람으로 믿었던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바깥으로 나가서 10여 분 있다가 돌아왔다. 앞서 2층에서 '동무가 치과 의사요?' 하고 물었던 고관에게 조사 내용을 보고한 뒤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 (중략).... 그 후 나는 지프차에 실려 보위부로 안내되었다. 보위부에서는 나를 구내 이발소로 데리고 가 이발을 시키고, 또 집으로 데리고 가서 거지 옷을 새 옷으로 갈아 입게 하였다. 하루아침에 대우가 달라졌다. 그 후 보위부의 한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우리 집에서 압수해 갖다 놓은 한글 타자기 (미국 언더우드 회사에서 만든 단 하나인 본보기 기계)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 타자기를 한 번 쳐 보시오.' 말투부터 달라졌다. 그 타자기 옆에는 국민학교 국어책이 놓여 있었다. 책상 앞에는 고관 군인들이 열 명 가량 둘러서 있었다. 극심한 고생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마침 1학년 국어책의 글자가 커서 간신히 보고 찍을 수 있었다. 나는 타자 연습을 한 적이 없었지만, 자판 배열을 알기 때문에 책만을 들여다보면서 글자판은 보지 않은 채 천천히 쳐 나갔다. 타자기에 낀 종이에 한글이 한 자 한 자 찍혀 한 줄이 다 타자된 것을 보더니, '야! 우리가 이것을 만들어 쓴다면 로스케(소련 사람)들처럼 사무 처리를 빨리 할 수 있겠는데.....'모두가 신기해하며 감탄하는 것이었다. 한 고관은 나에게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이 사람에게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오.' 한 마디 남겨 놓고 나가 버렸다. 글자 모양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시비는 없었다. 6.25 바로 직전에 미국 공보원에서 이 한글 타자기를 빌려다가 공개할 때는 모두가 타자기를 인쇄기로 잘못 알고 글자 타령이 많았다. 능률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타자기는 펜 대신 글자를 빨리 쓰는 기계라는 점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한글만 쓰는 사회의 사람이어서 그런지, 기계 능률을 맨먼저 거론하는 것이 반갑기만 했다. 지명된 사람을 의자에 앉혀 놓고 자음, 모음, 받침 키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난 뒤 자기 이름을 찍어 보라고 했더니 그는 정확하게 찍는 것이었다.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끌려 우리집으로 가 저녁밥을 먹고 또 다시 인민군 육군 병원(성모 병원)으로 끌려 갔다. --- pp. 107 -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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