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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교실 게시판입니다.
동물의 자리
작성자 주재석 등록일 25.02.20 조회수 2

 

 

 

동물의 자리

 

먹히지 않고 늙어가는 동물들을 만나다

김다은정윤영신선영 저 | 돌고래 | 2024년 10월 22일



목차

 

프롤로그 1: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서 ·········· 정윤영

프롤로그 2: 생추어리, 동물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공간 ·········· 김다은

동물도 집을 갖고 싶다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 ·········· 글 정윤영사진 신선영

야생의 숲과 철제 사육장, 그 사이에화천 곰 보금자리 ·········· 글 김다은사진 신선영

알고자 하는 마음이 사랑이 되려면제주 곶자왈 말 보호센터 마레숲 ·········· 글 정윤영사진 신선영

먹히지 않고 늙어가기를새벽이생추어리 ·········· 글 김다은사진 신선영

에필로그: 어떤 동물은 죽고, 어떤 동물은 산다 ·········· 신선영

 

 

책소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하는 시대,

네 곳의 생추어리에서 엿본 서로 돌봄의 가능성

 

반려동물 수의 급속한 성장, 축산업의 대규모 공장화, 야생동물 서식지의 파괴, 종 다양성 파괴, 먹거리의 대량생산 및 유통, 인수공통 감염병의 유행, 도시에 적응한 야생동물 종…… 동물에 관한 논의들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이루어지는 시대다. 국내에서도 보호와 보존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동물권을 위해 싸우는 단체들, 야생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에게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보금자리를 제공하려는 생추어리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오늘날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중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지구 생태계를 희생시키며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던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겠지만, 동시에 인류가 인간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적·정서적·기술적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생추어리(sanctuary)는 안식처, 보호구역이라는 뜻이다. 1986년 미국의 동물보호 운동가 진 바우어가 동료들과 함께 가축수용소근처 사체 처리장에서 살아 있는 양 힐다를 구출해 생추어리 농장(Farm Sanctuary)’을 만들었다. 힐다는 생추어리에서 1997년에 자연사했고 그의 묘비에는 영원히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킬 친구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생추어리에는 인류의 폭력적인 도구화(사물화)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이 살아간다. 간혹 구조된 야생동물들도 있고 유기된 반려동물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축산업, (의료적·미용적) 실험, 경주 등 오락산업에서 착취당해온 산업동물들이다. 애초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조되었기 때문에 야생에서와는 전혀 다른 몸과 경험을 지닌 생명체들이다. 이들은 생추어리에서 인간들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의 착취당하지 않는 삶을 보며 동물이 원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간이 이들과 어떻게 관계맺을 수 있는지 느끼고 배운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동물권, 생명, 돌봄이라는 가치의 증인이자 선생인 셈이다. 한국의 첫 생추어리는 2019DxE(Direct Actions Everywhere)가 종돈장에서 공개구조한 돼지 새벽이와 함께 시작되었다. 현재 한국에는 총 다섯 곳의 생추어리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책에는 새벽이생추어리,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 화천 곰 보금자리, 제주 곶자왈 말 보호센터 네 곳을 취재하고 기록한 내용이 담겨 있다.(2022년 개소한 카라의 미니팜 생추어리는 담지 못했다.) 김다은, 정윤영 작가와 신선영 사진가는 한국에 생추어리들이 생기기 시작한 2019~2020년경부터 관심을 가지고 활동에 참여하다가, 2023년 초 정식으로 기록을 결심하고 취재를 시작했다. 계절이 두 바퀴를 돌며 바뀌는 동안 생추어리에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혹은 평범한 돌봄의 나날들을 기록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이 네 곳의 생추어리들은 설립 목표, 운영 주체, 운영 방식이 모두 다르다. 동물을 좋아하는 개인이 시작한 곳(말 생추어리)부터 지역과 협업하며 운영하는 곳(달뜨는 보금자리), 또 수의학적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곳(곰 보금자리), 또 급진적인 슬로건을 걸고 치열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곳까지(새벽이생추어리). 어떤 곳에서는 동물을 ’(이름 이 아닌 목숨 명을 쓴다.)으로 세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마리로 세고, 어떤 곳에서는 인간이 동물을 관습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일반인들의 방문과 체험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도 한다. 작가들은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어떤 맥락에서 그러한 선택과 결정과 실행이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쪽을 택했다. 각각의 생추어리들은 상황과 자원에 맞춰 저마다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며 만들어가는 모든 자취가, 실패와 성과들이 모두 우리에게 커다란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생추어리들을 마냥 천국처럼 아름다운 곳인 듯 포장하지도 않고 간혹 아슬아슬한 질문들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생추어리에서 느낀 깊은 감동과 설렘이 축소되거나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선영 사진가가 포착한 200여 컷의 장면들은 그런 감동과 설렘을 독자들에게 극대화하여 전달한다.

 

 

책 속으로

 

소들이 알았고, 그래서 열었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창포를 모두 따라나섰고,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도로를 걸어 신선한 풀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갔다. 그랬을 걸 생각하니 책에서 봤던 문장들이 떠올랐다. 동물들의 행위력’, ‘생을 즐길 줄 아는 고유한 능력같은 것들. 그래서 소들의 마실 소동 혹은 탈출 시도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이 얘기를 써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밤중이긴 하지만 소들이 도로를 누비고 이웃 주민의 밭에 들어가 풀을 뜯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겁이 났다. 멧돼지가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내려왔을 때, 고라니가 밭에 들어와 농작물을 먹었을 때, 비둘기나 까치가 창문에 똥을 싸기만 해도 야생동물은 유해동물이 되고 합법적으로사살되는 일이 꽤 자주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물며 소들은 야생동물이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에 등록된 가축이고 주인이 있다.

--- p.57

 

부들, 머위, 메밀, 창포, 엉이의 귀에는 네모난 플라스틱 인식표가 달려 있었다. 귀에 달린 번호는 꽃풀소들이 농장에서 육우로 살았다는 증거였다. 미나리까지 여섯 명의 소들이 그날 농장을 나오지 않았다면 다른 소들과 마찬가지로 도살장으로 끌려갔을 것이고 그런 다음에야 인식표가 떨어졌을 것이다.

--- p.77

 

저희는 동물을 사육하는 분들에 비해 동물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 소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분들은 소를 키우는 분들인 거예요. 갈등 구도로만보면 길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보금자리가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표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살림을 어떻게 전환할 수 있을지, 그러니까 동물살림과 마을살림, 지구살림이 같이 연결되는 살림을 보여주고 싶고, 또 축산업 종사자들과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까지 생각하게 됐어요.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사랑이고요. 어떻게 보면 꽃풀소들이 저희한테 선물을 준 것 같아요.”

--- p.80

 

곰숲이라 부르는 약 330제곱미터 규모의 방사장에 나간 덕이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무관심한 채, 해먹 위에서 엉덩이를 비비며 편하게 누울 자세를 잡는다. 좁은 우리보다 시원해서인지 쉽사리 몸을 움직일 생각이 없다. TV와 선풍기를 켜놓고 소파에 누운 내 모습 같기도 하고. 덕이는 뭘 구경하는 걸까? 자신을 우리로 돌아오게 하려고 땅콩을 던지며 말을 거는 사람들? 땅에서 올라오는 더운 입김에 감겨 맥없이 꼬리를 흔드는 박새들? 단내를 풍기며 곰숲 안에서 대롱거리고 있는 장난감?

--- p.94

 

국내에 있던 사육곰 농장 스무 곳 중 한 곳이 문을 닫았다. 덕이와 소요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공간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다. 한 마리당 200만 원. 그리고 업종 전환 지원금도 농장주에게 지급했다. 한때 웅담용 어린 곰은 마리당 1500만원에 팔리곤 했다. 농장주 역시 그만큼의 수익을 기대하고 곰을 매입해 수십 년간 키워왔다. 기대했던 비용을 생각하면 농장주로서는 아쉬운 장사를 한 셈이다. 하지만 80대인 그는 웅담 채취용 사육곰 농장주라는 직업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사육곰협회에서는 2~3년만 기다리면 (정부가) 곰값을 쳐줄 거라고 했지만 애들이(곰들이) 나이도 먹고 사료값은 계속 들어가는데 수입도 안 되고, 기약없이 계속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곰 돌보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고민 끝에 나도 키우는 데 힘에 부치고, 이제 얘들도 좋은 데 가서 잘 살았으면 해서농장에 남은 두 마리 곰을 보내기로 했다. 농장주는 활동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구조 현장을 멀찍이서 바라봤다.

--- p.114~115

 

이 공간의 백미는 단연 벽면에 걸려 있는 커다란 모니터다. 곰 우리와 방사장 등을 비추는 스물네 개의 CCTV 화면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 우리마다 곰들이 뭔가를 먹고, 눕고, 어슬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안에 있는 내실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지 않아 어두운 그 안에선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외의 모습은 언제나 활동가들이 주의 깊게 지켜볼 수 있다. CCTV는 활동가들 각자의 휴대전화 앱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래서 잠깐의 휴식시간에도, 식사시간에도, 휴일에도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는 법이 없다. 활동가들의 이야깃거리도 언제나 곰의 일거수일투족이다.

--- p.132

 

2023925, 가을비가 무겁게 떨어지던 오전 8. 내리는 비를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상근 활동가 세 사람은 아침 돌봄을 시작했다. 돌봄은 종합운동이다. 온몸의 근육을 이용해 썰고, 들고, 끌고, 당긴다. 화천 활동가의 전완근과 이두근이 단단해지는 만큼 이들의 돌봄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바뀌었다. 한두 마디의 외침으로도 서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 흐르듯 안다. 십수 마리 곰과 함께 있는 공간 안에서는 작은 실수가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상기한다. 곰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화천의 돌봄수행에 다정한 수식어나 격식이 끼어들지 않는 이유다. 업무의 정확성과 효율성은 동료들 간의 신뢰로 이어진다.

--- p.140

 

김민재 활동가는 풍부화물을 다루는 곰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취향과 개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엔 어떻게 먹을까, 이렇게 하면 음식이 잘 안 나오는구나,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방법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각자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 p.145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과거보다 현재, 더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현재보다 미래에 동물을 사랑하고 곁에 두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에버랜드 푸바오의 귀여운 모습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대단한 인기를 모으기도 했듯이 사람들은 귀여운 동물들을 언제나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푸바오의 무엇을 사람들이 사랑하는지 질문하게 된다. 동시에 푸바오스럽지 않은 동물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묻게 된다.

--- p.172

 

"마마마마마마마"

밥 먹으라고 말들을 부르는 소리다. 김 대표가 부르는 소리에 멀리 있는 말들도 차량을 따라온다. 식욕이 왕성해 보이는 말들이 차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고, 그 뒤를 임신한 말들과 몸이 약한 말들, 서열이 낮은 말들이 따라 걷는다.

--- p.188

 

말의 수명은 23년에서 35년으로 알려져 있다. 할머니라고 불러 야 마땅한 서른아홉 살의 말은 얼굴이 매우 크고 다리가 짧았다. 한눈에 봐도 토종 제주마였다. 야생마의 큰 얼굴이 하얗게 셌다. 하얗게 센 털은 하얀 털과는 달랐다. 하얗게 센 털 아래로 거뭇한 피부가 얼룩덜룩했다. 눈가의 살들이 늘어졌고 쭈글쭈글했다. 코에는 가로로 몇 겹씩 주름이 졌고 입술도 처지고 헐렁거렸다. 할머니가 된 말은 이마갈기가 짧았다. 생추어리에서 본 말들의 갈기는 앞머리를 내린 것처럼 얼굴과 목까지 내려와 마치 머리카락 같았는데 어떤 말은 가위로 자른 듯 갈기가 반듯했고 어떤 말은 눈을 가릴 정도로 갈기가 길었다. 할머니 말은 갈기가 있던 흔적만 남았고, 목부터 등까지 길게 뻗은 갈기의 털도 아주 짧고 꼬불꼬불했다.

--- p.198

 

이제 한 살이 된 로에나는 제이시의 새끼다. 제이시는 김 대표가 처음으로 구조한 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제이시는 오른쪽 대퇴골이 탈골돼 잘 걷지 못했다. 제이시를 본 수의사는 단번에 안락사를 권했다. 그 말을 들은 김 대표의 지인이 자신이 살릴 수 있다며 안락사를 말렸다. 몽골에서 온 지인은 평생을 말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제이시의 배에 밧줄을 감았다. 김 대표에게 말의 목을 잡게 하고 배에 감은 밧줄을 한 번에 잡아당겼다. 밧줄이 조여들자 말이 크게 뒷발질을 했다. 대퇴골에서 '' 하는 소리와 함께 탈골된 뼈가 들어갔다. 그는 몽골에서는 이렇게 한다며, 한국 사람들은 너무 책으로 배운 대로만 한다는 말을 보탰다. 수의사 입장에서는 잘못된 의료행위로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제이시의 상태는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이시는 금세 회복했다. 뼈밖에 없던 제이 시는 제법 살이 쪘고 2년 뒤 로에나를 낳았다.

--- p.203

 

생추어리의 말들은 왜 지붕이 없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햇살과 바람을 맞고, 풀의 이름 따위를 고민하지 않으면서 풀을 뜯는다. 말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지 않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현재를 산다는 감각과 자연에서 노는 법 따위를 잊어버렸음을 깨닫는다.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말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우리에게도 좋은 시간이 생겨난다.

--- p.216

 

얼룩말이었을 동물의 가죽과 내장이 흙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경운기 짐칸에는 플라스틱 바구니와 비닐 자루가 있었고 그 안에는 말의 뼈와 살이 분류되어 담겨 있었다. 경운기 옆에는 임신한 말 두 마리가 올가미에 목이 묶여 있었다. 임신한 두 마리도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말이 도축당하는 걸 봐야 했던 게 분명했다. 지자체와 파출소에 불법 도축을 신고한 뒤 김 대표는 두 마리를 생추어리로 데려왔다. 다른 말이 도축되는 걸 보고 공포에 질린 말들을 어렵게 컨테이너에 태웠다. 생추어리에 도착한 뒤 두 마리는 안심했는지 곧바로 흙바닥에 몸을 뒹굴어가며 휴식을 취했다.

--- p.229

 

한라마는 제주도 재래종인 제주마와 해외에서 온 경주마인 서러브레드종의 교잡으로 태어난 혼종이다. 농사에 쓰이던 제주마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쓰임이 줄어들었고, 정부는 개체수를 확대하기 위해 제주마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경마용 제주마를 보급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제주마는 평균 체고가 116센티미터 정도로 작아, 서러브레드와 교잡하여 한라마라는 덩치가 크고 빠른 경마용 말을 만들었다. 제주마 육성을 이유로 생겨난 한라마는 목적대로 경주마로 활약했지만, 30년 만에 경주마에서 제외되었다. 이번엔 순수 혈통 제주마를 보존한다는 이유였다.

--- p.235

 

허밍이 아까보다 더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댄다. 허밍과 눈이 마주쳤다. 육상 포유류 중에 말의 눈이 가장 크다고 하던데, 정말 크다. 말의 눈은 머리 양쪽에 있어 시야가 아주 넓고, 그래서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은 잘 보지 못한다. 대신 코의 후각과 수염의 촉각이 뛰어나 가까이 있는 걸 감지할 수 있다. 정말, 허밍의 수염이 내 뺨에 닿는 게 느껴졌고 허밍의 커다란 눈동자 안에 내가 보였다. 나의 눈이 허밍의 눈동자에 또렷하게 비치고, 허밍의 목을 쓰다듬을 때 천천히 규칙적으로 뛰는 맥박이 손바닥에 닿는다. 허밍과 눈을 마주치고 그의 뺨을 쓰다듬은 30, 시간이 또 한 번 멈춘다. 이 마주침이 내가 살아온 시간, 내 소비 습관부터 오래 묵은 편견들을 무너뜨릴 거라는 걸 알았다. 이 순간, 그러니까 다른 존재와 마주하면서 내가 살던 세계가 무너지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 p.243

 

공장형 돼지농장은 전국에 퍼져 있다. 당연하다. 한국에서만 하루에 돼지 5만 마리를 도축해 취식한다. 이러한 공장형 농장들은 내부가 철저히 가려져 있어 화재든 무엇이든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드러날 일도 없다. ‘돼지의 생애혹은 돼지를 다루는 일이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는 까닭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데 있다.

--- p.270

 

돌봄하우스 안의 수돗가를 이용하려고 하면 거위 여럿이 다가와 이 인간이 뭘 하나 지켜본다. 혼자 다니지도 않는다. 꼭 골목길에 서넛씩 무리지어 어울리고 있다가 불쑥 다가와 말을 거는 식이다. 그러다 뭔가가 내키지 않는지 부리로 종아리를 쿡쿡 찌르면서 내 귓가에 대고 뭔가를 말하기 시작한다. 관심의 표현일까? 경계하는 걸까? 알 수 없다. 다만 큰소리에 울렁증이 있는 나로서는 상당히 진땀을 빼야 하는 상황이 된다. 부리로 장화를 찍어대면 꽤나 아팠다. 허리를 숙여 수도를 쓰면 거위 무리가 마치 깐깐한 감시관들처럼 내 옆을 빙 둘러쌌는데 나는 매우 움츠러들었다. 억울한 마음과 함께 괴팍한 마음이 든다. 거위를 향해 심술궂은 표정을 짓거나 이것 참 너무하는군.” 하며 어깨를 으쓱거리게 된다.

--- p.316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과정에서 내 안의 불균등한 애정 전선 아래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묻기도 했다. 동이는 사랑스럽지만 거위는 싫다.(심지어 거위는 여러 마리라서 그런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새생이와 보듬이들은 몇몇의 이름을 부르고 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좋고 싫음의 이유는 단순했다. 동이는 온순했고 거위는 거칠었다. 동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포유류지만 거위는 그보다 조금 더 먼 조류다.

--- p.316

 

젖은 공기에는 미풍의 단내보다 진득한 삶과 죽음 사이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마주친 두 눈에 붉은 핏발이 서 있다. 한 마리만 그런 게 아니다. 어딜 보나 그 눈을 보게 된다. 지독한 피로가, 오래되고 낡은 절망 같은 것이 그 안에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눈은,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이 어느 정도 미쳤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쳤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참혹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수긍하고 만다. 다시 그 눈을 빤히 봤다. 오늘 들어온 돼지들은 모두 모돈들이었다. 감금틀에 갇혀 임신과 출산만 반복하다 여기까지 왔다. 그래, 3년간 그렇게 갇혀 지냈는데 미치지 않았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도축장 입구에 선 1톤 트럭이 천천히 소독약이 방사되는 출입구로 출발했다.

--- p.330~331

 

함께 비질을 다녀오고 며칠 후, 혜리에게 연락이 왔다. ‘새벽이생추어리 비질 모임이 여성환경연대 임팩트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비질 기록집을 제작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한 달에 두 번씩 흑염소 경매장, 도살장, 전통시장, 동물체험장 등을 다닐 거라고도 했다. 활발하게 외부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사실 웬만하면 집에서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밖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고 하면 그건 나라꼴이 이상하다는 거다.”라고 농담인 듯 진심인 말을 하며 그는 자신의 변화에 새벽이생추어리와의 만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는 2022년 기획 중이던 전시에 새벽이를 그림에 담고 싶어서 새벽이생추어리에 연락을 했고, 이후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 p.333

 

 

: 김다은

 

[시사IN] 기자. 동물과 어린이를 포함해 더 많은 존재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길 바란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길 기다리고 있다. 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과 유튜브 채널 ‘2050 생존티비를 제작한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혼밥생활자의 책장』 『20대 여자를 썼다. 동물과 어린이를 포함해 더 많은 존재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길 바란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길 기다리고 있다. 대구에서 태어났다는 무용한 자부심으로 대한민국 어디에서 살아도 여름은 기똥차게 견뎌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치열하고 바쁜 시간 사이사이에 [혼밥생활자의 책장]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오래 했다. 이 방송은 깊은 밤 홀로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젊은 청취자들을 조곤조곤 불러 모으는 비밀 아닌 비밀 아지트가 되었고, 그들은 그렇게 모여 다시 읽고, 고쳐 쓰며, 새로운 삶을 위한 건강하고 유쾌한 연대를 모색해가고 있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큰 문제들을 책과, 책을 읽는 타인들과 지혜롭게 나누어 그 부피와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여 나가는 놀라운 감동과 경험을 책 혼밥생활자의 책장에 담았다.

 

 

: 정윤영

 

이러저러한 일로 밥벌이하며 르포를 쓰고 있다.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한겨레출판),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후마니타스), 숨을 참다(후마니타스), 달빛 노동 찾기(오월의봄), 마음은 굴뚝같지만(문사철),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굿플러스북), 숨은 노동 찾기(오월의봄) 등의 책에 공저로 참여했다.

 

 

: 신선영

 

반려견 하루와 남편과 함께 산다. 10대 후반 사진 언어를 좋아하게 됐다. 현재 시사IN사진팀 기자로 있다. 세월호 참사 6주기 추념전 왜 모르고 왜 기억이 안 나는지(아트스페이스풀, 2020), 20대 여성을 다룬 작업으로 재난과 치유(국립현대미술관, 2021)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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