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증기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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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주재석 | 등록일 | 23.08.30 | 조회수 |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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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터 후작의 증기기관
증기로 일하는 엔진, 즉 증기기관의 연구는 17세기까지는 거의 진보가 없었다. 17세기에 들어와서 그 발달에 특히 공헌한 사람은 우스터(Worcester) 후작(侯爵)의 2대째의 에드워드 서머싯(Edwaed Somerset, 1601~1667)이었다. 이 후작은 찰스 1세(Charles Ⅰ, 1600~1649, 재위 1625~1649)의 군에 가담하여 싸웠기 때문에 의회의 결의에 의하여 국외로 추방되어 「만약 그가 영국 국내에서 발견되면 가차 없이 사형에 처한다」고 선고되었다. 그렇게 의결되었음에도 그는 왕당의 스파이로 귀국하였다. 1652년 그는 체포되어 당시 흔히 있었던 일이지만 재판도 받지 않고 런던탑에 감금되었다. 후작은 군인이 되기 전에는 당시의 과학에 강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2년에 걸쳐 유폐된 사이에 여러 가지 과학의 문제를 고찰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저녁 식사를 요리하고 있을 때 열탕에서 나오는 증기에 의하여 냄비뚜껑이 쉴 새 없이 까딱까딱하며 들어 올려지는 것을 관찰하였다.
『그는 생각이 깊은 성격의 소유자로 과학의 연구에 취미를 갖고 있었으므로 이 사태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냄비의 쇠뚜껑을 들어 올리는 힘은 여러 가지 유용한 목적에 응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이 아이디어를 써서 광갱(鑛坑)에서 물을 배출하는 데 사용하는 증기기관을 설계하였다 (닥스, 《우스터 2대 후작의 생애, 기타》 ; H. Dirks, The Life, etc., of the Second Marquis of Worcester, 1865). 그러나 그가 정말로 증기기관을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그는 그런 기계의 만드는 방법을 《발명의 세기(Century of Inuentions)》라는 표제의 유명한 저서에서 약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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