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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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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사지 답사 실시(6월5일)
작성자 심기섭 등록일 11.06.05 조회수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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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구반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충주시 가금면 유송리에 있는 김생사지를 답사하고 탁본도하고 돌아왔습니다.

< 안내문>

신라의 명필인 김생(金生)인 성덕왕 (聖德王)10년(711) 에 가난하고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글씨에 능하였고 원성왕(元聖王) 7년(791) 80세까지 붓잡기를 쉬지 않았다. 이 사지(寺地)는 김생이 만년에 창건한 사찰터로 주변에 장대석이 많고 석탑재와 와편, 도자기편이 산재해 있어 이곳을 "와당밭"이라고 일컫을 정도로 와전류(瓦塼類)가 많이 출토되었다.

김생사지(金生寺地)는 『수산집』의 김생사중수기(金生寺修記)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의 기록을 통하여 북진애(北陣崖)-예성(蘂城)의 북쪽나루- 즉 현 위치의 김생사(金生寺)에서 두타행(頭陀行)을 닦았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수년전까지 있었던 고와가(古瓦家)의 본체 용마루에서 『건융을미(乾隆乙未-1775)』망와 4점과 『성상오십일년을미 충청도 충주』의 암기와가 발견되었다.

수습된 유물로 보아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근래까지 조선시대 고가터가 남아 있으며 1979년 당시 두채의 건물이 "ㄷ"형태로 있었다. 절터의 서쪽 강가에는 김생이 쌓았다는 김생제방(金生堤防)이 있는데 이 제방은 강물에 의한 토량 침식을 예방, 사지의 평탄대지를 조성하기 위해 자연석으로 쌓았던 것으로 40~50cm정도의 길이에 높이 3~4m규모로 남아있으나 현재는 충주댐 건설로 물에 잠겨 자취를 찾기 힘들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금생사에서 공부하던 학동들이 제방쪽의 여울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방해가 되므로 김생이 도술을 써서 제방을 쌓은 이후로는 여울 소리가 끊어졌다고 하여 벙어리 여울이라고 한다.

한편,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국보 제6호인 7층석탑은 이 절의 책들을 보관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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